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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령 Jul 10. 2023

Chapter01. 추억

추억을 갚는 법

어릴 적 훔쳐먹던 다 마신 커피잔 속 얼음맛,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더운 공기 속에 들려오는 놀이터 소리, 학교 점심시간에 누워있으면 얼굴에 스며들던 햇빛의 온도, 주말 아침 잠결에 맡는 빨래향


 종종 그리워지는 그때 그 시절의 맛, 향, 음(소리)들이 있다. 물론 어른이 되면 될수록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기 쉬워지지만 다시 느끼기 어려운 감각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 옅은 미소가 번지는 추억의 조각들 속 배경을 더듬다 보면 나를 나른하고 정적인 인간으로 자라나게 해 준 이의 모습도 보인. 남아있는 추억 조각들을 모아 맞추그들에게 받아두었던 잔잔한 사랑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그들이 선물한 기억과 마음을 말미암아 남은 삶 운영할 수 있는 힘으로 삼곤 한다. 그 힘은 어떤 증표 한 조각으로 남겨지기도 하는데 우린 그걸 '마음의 빚'이라 말한다.

 운도 좋은 나는 많은 이들이 남기고 간 증표 더미를 마음에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덕분에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이를 갚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부채감도 커진다. 오랜 시간을 들여 무사히 한 인간을 키워낸 가족들과, 예전엔 과자, 지금은 술잔을 앞에 두고 푸념을 들어주는 친구들과, 종종 나도 몰랐던 나의 진가를 알아봐 준 고마운 사람들 등등... 갚아야 할 마음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에게 때때로 작은 선물을 건네, 고심하여 선택한 표현으로 마음을 전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웃는 것 말고도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이런 고민을 참 오랜 시간 했었다.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오랜 시간 고민만 하는 사이 소중한 이들이 영영 내 곁을 떠나버리는 일이 생겼다. 그들이 곁에 없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기엔 나라는 인간은 너무나 어리고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문득 그들이 없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무너지던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또다시 혼란스러워지는 마음을 진정하고자 무작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안간에 나는 전화기에다 대고 "엄마, 나 행복하고 건강할 거야. 그러니까 엄마도 꼭 오랫동안 행복하고 건강해야 해."라고 내뱉었다. 그 순간에 깨달았다. 떠나간 이들은 남겨진 이에게 불안함을 남기는구나. 연이어 깨달았다. 내 혼란은 또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심장박동에서 왔으며, 똑같은 불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꿋꿋이 살아내며 오랜 시간 그들의 삶에 머무는 것이 마음을 갚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들은 안다. 누군가 또 곁을 떠날까 불안정하게 뛰는 심장박동은 참 오래도 머문다는 것을.

 학창 시절 친구를 떠나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내가 꿈에 나왔다며 다급히 안부를 묻던 친구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무뚝뚝한 목소리와 안심하던 숨소리. 누군가를 잃는 데에 면역이 있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치러야 할 일이지만 온 힘을 다해 미룰수록 좋은 유일한 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를 살게 하는 추억 조각이 떠오른 날엔 그 배경 속 이에게 연락해 안부를 건넨다. 나의 평온함이 온전하여 당신도 온전한 삶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수화기 너머 "밥은 먹었어?" 같은 평범한 문장을 건넨다. 누군가의 추억 속에 있는 당신도 최대한 오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길 바란다. 나도 그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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