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에서 어떤 행동을 했어야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갓 대학을 졸업한 평범한 "여자" 대학생이라면 대부분 23-24살 정도에 취업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그런 나도 남들과 똑같이 24살에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취업이 되었던 그 순간, 어찌나 눈물이 주르륵 나던지.. 평소 이성(理性)적인 성격이 강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없이 자소서, 포트폴리오 고쳐 쓰던 순간과 맞지도 않던 구두를 신고 물집이 잡힌 발을 이끌며 면접을 보러 가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끝났다는 안도감의 눈물이었다.
내 앞으로의 인생은 빛으로 가득 차 보였고 소위 남들이 말하는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빛으로 차보였던 순간은 잠깐의 눈부심이었고 그 눈부심으로 눈이 멀어버리며 암흑 속에 갇혔다.
첫 출근을 하였다. 회사 사람들은 모두 환영하였고 갓 대학을 졸업한 나는 당연히 그 회사의 막내였다.
이제 직장인이 된 지 5년 차가 된 지금 신입(막내)을 보면 대부분 싱그럽고 열의에 차있으며 뭐든 열심히 하려 한다.
5년 전의 나도 그랬다. 싱그러웠고, 열의에 차있으며, 아무것도 모르니 열심히 배우려 했다.
열심히 배우기 위해 일이 없더라도 선배들을 따라 야근을 하며 배워갔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어떻게 행동을 했어야 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수습기간 1개월이 지났을 때였을까?
다소 친하게 지내던 12살 차이의 A상사가 비어있던 내 옆자리를 자주 방문(?)했다.
처음엔 "업무를 다하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빈도는 잦아지더니 나중엔 상주하게 되었다. 빈도가 잦아질수록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인에게 말하니 다들 내 착각일 수 있다며 다들 쉬쉬했다.
시간이 지나 생일을 맞이했다. 출근을 하니 책상에는 20만 원대의 전자제품이 있었다. 짐작과 맞게 A 상사가 두고 간 "선물"이었다. 직원들 생일 때마다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다시 돌려주니 다 주는 선물인데 왜 안 받냐며 이상한 사람이 된 건 선물을 받은 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일선물은 물론 축하를 받아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정규직 전환에 있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A 상사", 누구나 그랬듯 첫회사가 너무 소중했던 "나"
나는 결국 그 일방적인 "선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물"을 받고 나니 회사가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그 선물을 볼 때마다 매일 열심히 배우고 싶던 그 열의는 사그라들었고, 힘이 넘치고 싱그러웠던 사회 초년생은 "오늘 하루는 제발 그냥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는 걱정과 근심으로 쌓인 암흑 같은 하루를 시작했다.
이런 암흑 같던 하루 속에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A 상사가 기분이 좋지 않아 모두에게 그 기분은 전염시킬 때, 모두 나를 찾았다. 나에게 와서 그의 기분을 풀어주라 했다. 어떤 방식이로든.
그 방식 중 하나는 A 상사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오라는 거였다. 내가 그 옷을 입을 때 A 상사가 유독 좋아한다 했다. 나는 좋아하던 그 옷을 의류 수거함에 버리고 왔다.
의류 수거함에 좋아하던 옷을 버리고 온 날, 입사가 감격스럽던 그날과 다른 의미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좋아하던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한 나는 내가 하던 일까지 싫어하게 됐고, 이곳에서는 직원이 아닌 옷을 예쁘게 입어 누군가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 "이성(異性)"이라는 존재로밖에 인식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처절했다.
결국 결말은 영화와 책과는 다르게 해피엔딩은 아니다. 직접적인 증거와 물증도 없을뿐더러 내가 겪은 기억만 남아있을 뿐 신고를 할 수 조차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선물" 이라고 포장된 일방적인 그 물건을 돌려주는 것, 수습기간에 맞춰 퇴사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다.
단 하나, 이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던 것은 상대가 한 언행이 불편하고 본인 스스로 숨고 싶고 자신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게 바로 성적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당시, 나는 내가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들어 보지도 못했다.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되며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수치스럽게 느꼈다면 그게 맞다는 것, 수치심을 느끼게 한 그 행동과 말은 잘못됐다는 것, 본인이 숨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앞서 말한 이야기보다 덜 하거나 더 심하거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이러한 일을 겪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 상처의 크기는 감히 내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심하다는 것도 안다.
다시는 이런 고통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과 앞으로 사회에 나올 나의 가족, 친구, 선후배에게 이러한 일이 당연시하게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