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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티 Apr 17. 2024

It is there

그게 거기 있으니까


이번 여정을 떠나기 전

고향에 잠시 내려가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집 가는 길, 차 안에서

아버지가 질문을 했습니다.

"네팔은 왜 다시 가냐"


씩씩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냥 좋았어요"


조용한 엔진 소리 너머

조금의 어색함이 감돌았습니다만

분명 정직한 대답이었습니다.




영국의 군인이자 모험가,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는군요.


"그게 거기 있으니까" (Because it is there)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냥 내 마음 이끌리는 것들

가슴속에 하나씩 품고 있으시다면

쉽게 이해를 하시리라 생각해 봅니다.




*2022년 겨울 네팔에서 잠시 들렀었습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카타르에 3주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주일간 머물렀어요.


2022년 12월 트리부반


저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들

그리고 그 봉우리들에 둘러 쌓인

카트만두 시내, 불교와 힌두교 사원들

조금은 쌀쌀한 공기, 향과 매연냄새 등

그곳의 많은 것들이 새로웠었죠.


그게 그리도 좋았는지, 꼭 다시 오겠노라

다짐을 했었지요.




태국에서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돈므앙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체크인할 때에 한국에서 오신 형님을 만났는데

미얀마를 쭉 돌아보고 오셨다고 하시는군요.

상준형님이라는 분이었고

마침 같이 네팔로 가는 일정이라

함께 이동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보니 상준형님 옆자리더라구요

비행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덧 착륙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웰컴 투 네팔


딱 1년 만에

카트만두, 네팔에 다시 돌아왔어요.

조금은 감격적이기도 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간이라

지난번 카트만두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낌도 나고 참 묘하더군요.


비행기에서 내리고는 입국 수속을 했어요.

네팔에 입국을 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125달러짜리 90일 비자를 받고

느긋하게 네팔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생각이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도착비자 양식을 작성하고 결제를 하려는데

직원이 결제를 거부하는 것이었죠.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지갑에 있던 100달러 지폐가 구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카드결제도 자꾸 오류가 나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100달러 신권은 배낭 안에 있었고

배낭은 출국장 너머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를

신나게 돌고 있었거든요.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지갑에 신권 50달러가 있는 게 생각이 났죠.

그래서 50달러를 내고 30일 비자를 받았습니다.


90일 비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30일 비자를 받게 된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죠 뭐

네팔에서 좋은 시간 잘 보내다가

더 머무르고 싶으면 그때 출입국 사무소 가서

비자를 연장하면 된답니다.


노 프라블럼

문제없어요.




비자를 발급받고, 짐을 찾은 뒤에

상준형님 그리고 공항에서 만난 요나스와 (독일인)

타멜거리(카트만두 시내) 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하면

안전하기도 하고요

심심하지 않게 다닐 수 있어요.

택시비도 나눠내니,

가난한 여행자의 팍팍한 주머니 사정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되지요.


타멜거리 근처, 지난해 머물렀던

플라넷 노마드 호스텔로 향합니다.


어둡고 서늘한 카트만두에 꽉 들어차있는

오래된 자동차와 오토바이들 사이를 뚫고

한참이 걸려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예약 없이 도착한 그 숙소에서

주인 부부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어요.

아내분에게 나를 기억하냐고 물었는데,

작년에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작년 이맘때쯤 온 한국청년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지금 보니 팔짱을 끼고 있네요


잘 지냈는지, 별일 없었는지 안부를 물은 뒤

슬슬 체크인하기로 했습니다.


10인실 도미토리가 이미 만실이랍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특급제안을 하셨습니다.

같은가격으로 줄 테니 6인실에 묵으라네요.


정말이지 쾌조의 출발입니다. 축구경기로 치면

경기 시작과 동시에 득점을 한셈이죠.


짐을 방에 두고, 당분간 같이 지낼

조르죠 아저씨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조르죠는

밤이 되면 헤드랜턴을 끼고

책을 읽거나 짐을 정리하는데

그 모습이 꽤나 귀엽습니다.


상준형님과 조르죠 아저씨


곧이어 저녁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카트만두, 타멜거리의 풍경과 냄새

참 오래간만입니다.


상준형님과 요나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볶음밥, 모모, 초우멘 등 음식을 나눠먹고

일찍이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숙소 옥상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네팔 바랏푸르에서 온 비벡과

이란 테헤란에서 온 제이


제이와 비벡


비벡은 네팔의 바랏푸르라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인데, 반복되는 삶에 답답함을 느껴

카트만두로 떠나왔답니다. 몇 달 동안 지낸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랬고


이란에서 언론인이었던 제이는

삶과 직업 등 많은 것들에

자유로움이 없음을 한탄해하며

옷 몇 개, 가방 하나 챙겨 떠나왔답니다.

노마드 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청년이죠?

집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고

이야기를 해준 게 기억에 남네요.


땅콩 먹고 맥주 마시고

담배 한 모금씩 나눠 피고

인생 사는 이야기 좀 하다가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또 땅콩 먹고 맥주 마시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집니다.


체스를 두고 있네요




잠자러 갈 시간이네요.

작년 이맘때 와서 10인실을 썼을 때에는

코 고는 소리, 기침 소리, 사랑 나누는 소리 등

시끄러워서 잠을 많이 설쳤는데요.


여전히 코 고는 소리는 방 안에 가득하지만

왠지 금방 잠에 들 것만 같은 포근한 밤입니다.


제법 포근해요


카트만두 타멜거리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

낡은 건물에 난방시설도 없습니다.

공기가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의 사람들은 따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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