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그리고 소진이, 여러분, 혹은 영윤 선생님께

실패한 편지

by 재원

[주의] 이 글에는 폭력/죽음/자살 관련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재원입니다.


이렇게 느닷없이 여러분을 찾아서 당혹스러우실 마음을 이해합니다.

이 메일링은 실패했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갑작스럽게 도착한 오랜 친구의 안부, 구조 요청, 전 애인의 편지,

불화하게 된 누군가의 속마음 그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을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햇볕 아래 마루 위에서 안온하고 다정하게 친구를 부르고 싶었어요.

첫 메일이니까요.


그러나 무슨 일인지 안쪽에서 갉아먹힌 자리가 아파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오래도록 쓰지 못한 것들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분명히 소설 속 인물들입니다. 몰입하지 마세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소설 속 인물들일지 저는 확신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항상 과거형으로 쓰여 현재형으로 읽히고,

가상의 것임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편지는 가상을 전제한다는 점과는 반대에 놓여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쓸수록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상하지요.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나는 글이 나를 끌어당길 때마다 속절없이 목이 졸리듯 끌려가곤 해요.


이건 재원으로서 나타나는 마지막 글이길 바랍니다.

첫 편지를 이렇게 드립니다.

미욱한 저를 미워하셔도 괜찮습니다.

애써 기다린 편지가 이런 자책의 말로 뒤범벅되어있어서 미안합니다.

이 메일링은 실패했습니다.

하여, 실패를 남깁니다.




영윤 선생님께


선생님, 혜미가 죽었어요. 교통사고로요. 불에 타서 시신도 찾을 수 없대요. 새어나온 휘발유에 불이 붙어서 차가 통째로 시신과 함께 터져버렸대요. 펑.


선생님. 혜미가 죽었습니다. 듣고 계신가요. 혜미가 죽었다고요. 혜미가. 우리가 사랑한, 그 혜미요. 선생님, 혜미를 기억하시죠. 웃을 때면 눈꼬리가 반달같이 휘던 그 혜미, 고집스러운 입매와 상스러운 욕을 달고 사는 혜미. 페인트 사탕을 찬찬히 입안에서 녹여가며 자신을 푸르고 짙은 색으로 물들이길 좋아하는 혜미. 책상 모서리에 사타구니를 바짝 붙이고 매달려 평온을 찾던 혜미. 같은 시설에 사는 언니의 신분을 빌려 21살이라고 속여 선생님을 만난 바로 그 혜미. 내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아는지 선생님은 모르시겠죠.

왜냐하면 혜미는 그때 사라졌고, 우리가 쓰던 소설은 마무리 짓지 못했으니까요. 학교 백일장에는 내지 못했고, 그해 당선자는 선생님이 자신하던 저도 혜미도 아니고 다른 아이였죠. 식물인간 상태로 무의식 속에서 산을 헤매다 끝내 깨달음을 얻고 깨어나는 그런 반듯한 소설 같은 게 당선됐잖아요. 그때 선생님이 그랬죠, 당선자 없음이라고 발표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이제 막 부임한 선생에게 그런 힘 같은 게 어딨겠냐면서 나를 위로하면서요. 그때 내 어깨를 다독이던 그 축축한 열기가 느껴지는 손 같은 거 사실은, 정말 너무 싫어서, 나는 솔직히 그때 혜미를 왜 죽여버렸느냐고 묻고 싶었어요. 당신은 늘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이에요.


좋아했어요. 선생님. 풀꽃의 사랑스러움을 말하지 않아서요. 보란 듯이 아버지를 죽여버리는 글을, 어머니가 열댓 명이 나오는 글을 써도 치워버리지 않고 묵묵히 읽어 내려가던 그 눈길을요. 까만 동공이 글자 위를 가로질러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로 끝없이 내려가는 것을 숨죽이고 지켜보곤 했어요. 계산대 앞에서 지우개나 샤프를 하나 쥐고 주머니에 넣고 내기하는 기분으로. 글을 읽으려고 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흰 정수리가, 동그란 머리통이. 개인적 해결 방안 따위를 논하는 글쓰기를 채점하던 사람이 여자와 여자가 정을 나누고 서로 몸을 붙이고 우는 얘기를 살펴보던 게 끔찍하게 즐거웠어요. 선생님도 즐거우셨죠. 화장실에서 그래서 우셨잖아요. 화장실에서 흐느끼던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걸 알아요. 잘 해내고 싶으셨잖아요. 그냥 그게 전부인 마음이었을 뿐이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모든 건, 스물 여섯에게는 너무 멀고 무거웠던 거잖아요. 그래서 이해해요. 선생님이 그렇게 비겁해진 것에 대해서. 그런데요, 선생님. 우리는요? 열아홉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나요?


어쩌면 나는 혜미가 죽었을 때 곁에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살아있는 그 애를 외면하고 그 차에서 빠져나왔던 것 같아요. 아니, 사실 선생님과 제가 공모했던 것 같아요. 혜미는, 혜미의 인생은 어차피 계속되어봤자 불행할 뿐이니 우리가 마무리해주자고, 혜미도 고마워할 거라고 자위했잖아요, 우리. 그래서 혜미는 영문도 모르고 우리를 사랑하며 죽었을 거예요. 사랑은 영원할 거예요. 혜미가 죽었으니까, 우리는 살았으니까.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혜미는 영영 스물여섯 살일 테니까.


저는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아이들의 글을 하염없이 보고 다듬어요. 어떤 아이가 제게 말하더라고요. 따뜻한 눈을 만지는 것 같아요. 그때 이상하게 혜미가 생각났어요. 그제야 혜미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따뜻한 눈이라니 말도 안 되잖아. 반려견을 위해 만들어진 장난감 따위를 만지며 아이는 좋아했어요. 누르면 뽀득뽀득한 소리가 나요. 눈 밟을 때처럼요. 맞아. 스트레스받을 때면 이런 걸 만져. 그때 말랑거리는 것을 주물럭거리며 버틸 수밖에 없는 마음은 뭘까요. 그런 마음은.


학교는 여전하더라고요. 점점 색이 빠져나가며 바래는 담황색의 벽돌이라든가. 화단에 정리되지 않은 무성한 풀들이. 다만 추락 방지용 펜스 따위가 그 층의 모든 창문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었어요. 펜스 끝에 손을 올리면, 그 열이 저 끝까지 전달될까. 그래서 마지막 사람은 조금은 따뜻한 철을 만질 수 있을까. 저는 감상적인 말을 습관처럼 했고, 혜미는 아집에 차 있고, 감상적이라서 지겨웠고 오글거렸다고 말했어요. 선생님도 제 글을 읽을 때 그런 걸 느끼셨나요? 그래서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하고 저를 불러냈나요. 네 백일장 글을 읽었는데 상을 받기엔 턱없이 모자라니 일찌감치 나처럼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으셨나요. 동아리 시간에 선생님이 그러셨죠. 대사로, 욕설로 소설을 시작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하면 누가 안 돌아보겠냐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물어보고 싶어요. 그럼 총은요? 한국은 총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이것도 독자에게 효과적일까요?


아무도 저를 씨발년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혜미가 없으니까요. 이제야 좀 알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년이라는 욕은 쓰고 싶지 않다고, 결연하게 말하던 혜미가 제게 그렇게 말한 이유. 씨발년아, 씨발의 의미를 생각하느라고 나는 너의 씨발년이 맞지, 우린 서로의 씨발년이잖아. 같은 생각을 하느라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나에게 죽어버리겠다고 할까요. 선생님은 아세요? 선생님이 그러셨죠. 피사체를 사진으로 찍는 일은 그를 총으로 쏴버리는 일과 같다고. 그렇다면, 소설 쓰기도 그럴까요. 총으로 쏴버리는 일일까요. 영원히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를 붙들어버리는 일일까요. 나는 이제부터 혜미를 총으로 쏴 죽여버릴 거예요. 선생님이 그걸 도와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는 선생님께 늘 복수하고 싶었어요. 아니, 혜미는 그랬어요. 보란 듯이 자신을 거절한 당신을. 영원도 순간도 맹세하지 않는 당신에게.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썼어요. 그 소설을 이제 마무리지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죽어주세요, 선생님. 도와드릴 테니까요. 답장을 기다릴게요.


소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