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cherry Nov 27. 2023

향수

아름다웠던 그 시절


어렸을 적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내달려가 항상 어머니에게 백 원, 오백 원만 달라며 찡찡댔다. 그러면 어머니는 마지못해 주머니에 집히는 대로 동전들을 건네주셨다. 매번 받을 때마다 그 금액은 달랐지만, 굳이 많은 돈이 필요치 않았기에 얼마를 받든 크게 상관치 않았다. 사실 100원만 있어도 당시 '국민학생'은 충분히 일탈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받은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고 찰랑찰랑 대며 다시 학교 앞 문구점으로 뛰어가 곧바로 50원짜리 아폴로를 산다. 그렇게 아폴로 빨대를 입에 욱여넣고는 우물우물 거리며 학교 앞을 서성이다 보면, 어느새 친구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이게 된다. 그리곤 정글짐 앞에 모여 얼음 땡(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한참을 열띠게 땀 뻘뻘 흘리며 놀다 보면 점심 먹은 배가 금세 허기져왔고, 주머니에 있던 남은 동전들을 가지고 다시 문구점에 갔다. 이번엔 배를 채울 수 있는 불량식품을 찾는다. 그중 베스트는 역시 쫀드기다. 그 자리서 포장지를 뜯고는 흙먼지 묻은 손으로 쫀드기를 하나하나 아껴서 찢어먹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같이 놀던 친구들이 옆으로 쪼르르 붙어 자기도 달라며 같은 흙먼지 묻은 손을 내민다. 그렇게 쫀드기를 한 줄 두 줄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노을 진 하늘에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며 각자 뿔뿔이 제집 찾아 흩어진다. 


그렇게 잔뜩 흙먼지 뒤집어쓰고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된장찌개 나를 반긴다. 부엌에선 어머니가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나를 반기며 밥 먹어야 하니 우선 씻고 오라고 하신다. 나는 곧바로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 가서 웃옷을 벗고 얼굴과 손을 나름 깨끗이 씻고는 마루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는다.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동생, 나 이렇게 다섯 식구가 도란도란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한다.




오늘 새벽녘에 일어나 기도를 올리고 나니, 문뜩 이런 어릴 적 기억들에 잠기게 되었다.

그리곤 그 시절에 겪었던 모든 추억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꿈처럼 느껴짐에 깨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오랫동안 그 기억들의 동아줄을 붙잡고는 향수를 탐닉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의로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