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가?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
불과 몇 년 전인 3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늘 부정적이고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 여겼다. 세상에 그 누구라도 죽음을 곱상히 보려 하겠는가. 다만, 죽음은 자연 현상의 일부이며 그 자연 속에 인간 역시 속해 있기에 이러한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30대에 접어들어서 생각보다 많은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중학교 때부터 지내오던 친구를 암으로 떠나보내야만 했고
사회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허망하게 보내야만 했고
나를 가르치고 도와주시던 스승님 가시는 길 배웅해야만 했고
같이 일하던 여러 직장 동료들과, 업계 종사자 분들의 뒤안길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먼 길 배웅하고 나니 마치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무정한 죽음 앞에서 두렵기는커녕 모든 게 초연하게 느껴졌다. 죽음이 그리 슬픈 일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면서 되려 차분하고 냉정해지며 그 ‘진리’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준비를 굳이 ‘정해진 나이’에서만 준비하는 것이 아닌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차분히 주변을 정돈하고 치우기 시작했다. 혹여 내가 정말 죽더라도 세상에 남겨진 나의 흔적들이 나를 평가하게 될 것임을 알기에 말이다. 그 덕에 집안은 매일같이 청결한 상태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했을 때 반응이 반반이었다.
‘재수 없는 소리’
‘현명한 생각’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생각이 같았다.
그 친구들 역시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을 거란 나의 말에 깊은 동의를 표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자신의 와이프에게 만약 자신이 죽으면 특정 서랍칸을 열어서 확인해 보라고 이르기도 했단다. 거기에는 자신이 여태 모아둔 저축통장과 유서가 있다고 말이다. 나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친구를 앞에 두고 감탄하고 말았다.
재수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은 깊고 섬세한 감수성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심지어 몇몇은 눈물지으며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며 나를 타이르기도 했었다. 나는 괜스레 괜한 말을 꺼낸 거 같아 미안한 마음에 우는 친구를 한참을 다독여야만 했었다. 심지어 요새 힘든 일 있냐면서 혹시 내가 나쁜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며 의심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나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이렇듯 죽음에 대해서 각기 다른 입장들을 가지고 있지만, 나의 주관은 죽음이란 절대 부정적인 일도 부조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만물들에게 주어지는 삶과 죽음은 늘 물아일체 상태이며, 둘 사이에는 그 어떠한 경계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즉, 삶과 죽음은 늘 하나다.
삶이라는 게 늘 항상 변덕의 온상이라 죽음 역시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는 나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죽음 앞에서의 나만의 태도는 나만이 갖출 수 있는 마지막 ‘존엄’이기에 이 역시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으리라.
나는 준비되어 있다. 혹은 준비 중에 있다.
잘 죽을 준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