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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Mar 01. 2024

제비꽃

소멸

( 제비꽃의 씨방에 씨가 가지런하게 들어있다가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떠난 뒤 텅빈 씨방의 모습)


 입춘 절기도 지나고, 3월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달력상으로도 봄이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삼일절 국경일을 맞아 베란다에 꽂아놓은 태극기가 이리저리 심하게 펄럭이는 것을 보니 겨울이 순순히 떠나려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바람으로 표현하나 보다.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지나고 나면 눈길 닿는 곳마다 노란색의 민들레, 꽃다지, 하얀색의 냉이꽃 등 방석식물들이 앙증맞게 꽃을 피울 것이다. 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즈음 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제비꽃도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되면 반가운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는 이들의 얼굴이 환해질 것이다.  

지난해 봄 활짝 피었던 제비꽃이 진 자리엔 동글동글한 씨앗이 마치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빼곡하게 씨앗이 가득 담겨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었다.

"어라! 과밀학급이네!"


 . 첩첩산중 굽이굽이 돌아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 한 집의 형제자매가 평균 5명 이상이었다. 그래서 시골 촌구석의 국민학교도 한 학급에 60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하는 과밀학급이라 쉬는 시간이면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가 놀았기 때문에 넓은 운동장이 비좁았었다. 

 형제자매가 많으니 국민학교를 함께 다니는 가정이 많았다. 언니가 혹은 오빠가 또는 형이 동생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며 등교를 같이하고 학교 일정이 일찍 끝나는 동생은 형제들이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하교를 함께 했다. 그들은 학교 선배로서 학교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했고, 동생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선생님보다 먼저 상대에게 곧바로 응징을 했다.

 그렇게 학생들로 가득했던 국민학교가 내가 졸업하고 10여 년이 지나자 분교로 전락해 스쿨버스가 시골로 다니면서 학생들을 태워 멀리 떨어진 이름도 낯선 마을로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더니 20년이 흐르자 국민학교는 온데간데없고 개인이 운영하는 무슨 농업박물관이 그 자리에 들어서며 정겹던 학교 건물이 사라지고 현대적인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등 수많은 표어로 가족계획을 외치던 때를 생각하면 진정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미래에 대한민국이 소멸할 수 있다고 여기저기서 걱정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시골은 물론이거니와 서울에서도 초등학교들이 폐교된다는 뉴스를 보니 개인적으로도 놀라웠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는 것을 보며 그 옛날 허경영이 선거에 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공약이 황당하다고 치부했었지만 '지금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예언가였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너무 비싼 집값에, 경력단절, 힘든 육아, 사교육비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많을 것이다.


 제비꽃이 세찬 바람과 비 등 역경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 씨방 안에 씨앗을 가득 만들었다. 씨앗이 다 여물면 씨방을 세 갈래로 활짝 벌리고 날씨가 적당한 날에 힘차게 씨앗을 튕겨내면 툭 튀어나간 씨앗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할 것이다.

제비꽃이 환경이 좋지 않아 씨앗을 만들지 않는다면 제비꽃 또한 지구에서 머지않아 소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봄이 와도 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보랏빛의 앙증맞은 제비꽃을 볼 기회가 사라질 것이다.


옛날 어른들이 흔히 하시던 말씀으로

"사람이 세상에 나면 저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온다"는 말이 있다.

'옛말 그른 것 없다'라고 했는데 저 말도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고 싶은 지금이다.

아이들의 뛰어다니는 모습, 웃음소리, 재잘거림을 못 본다는 것은 참 슬픈 일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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