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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Apr 04. 2022

수련과 단풍나무

인연

                 수련 잎에 내려앉은 단풍잎

단풍나무 곷

 연꽃과 수련은 연못, 소택지, 호수 등 물 빠짐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의 풀이다. 식물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모양의 넓은 잎과, 비슷한 색으로 물 위에 꽃을  피우는 연꽃과 수련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수련과 연꽃의 잎은 뿌리에서 나오는데 수련의 잎은 한 부분이 조금 벌어져 있어 그 모습이 어찌 보면 화살표 머리 모양처럼 보이고 연은 잎에 갈라짐이 없다. 수련의 잎은 물 표면에 바짝 붙어 있는 반면 연잎은 잎자루가 수면 위로 1~2미터 정도 길게 올라온다. 수련의 꽃은 6~8월 3~4일 동안 낮에만 피는데 연꽃은 밤에도 피어있는 것이 다르다.

 연잎의 중앙에는 아주 작은 숨구멍들이 있는데 그것은 연 줄기를 통해 진흙 속의 뿌리까지 연결되어 산소가 유입이 된다. 연잎은 코팅이 되어 있어 물방울이 떨어지면 동그란 공 모양을 유지하면서 굴러다니다가 떨어져 내린다. 이 과정에서 먼지를 물방울과 함께 떨어뜨릴 수 있어 연잎 표면이 깨끗한 상태가 유지된다고 한다.

 나뭇잎에 울긋불긋 색이 들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단풍나무의 단풍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5~7갈래로 깊게 갈라진 모양이 꼭 앙증맞은  아기손바닥 모양같아 보이며 자연의 화사한 색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단풍잎은 사람의 마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마력이 있다.

 단풍나무는 물 빠짐이 좋은 땅에서 자라며 높이 10m까지 자랄 수 있는 교목이다. 단풍나무의 꽃은 나뭇잎이 먼저 나온 후에 개화가 되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워 단풍나무의 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꽃은 암적색으로 가지 끝에 피는데 꽃받침과 꽃잎은 5장이고, 암술대는 2개로 갈라지고 수술은 8개로 열매에는 날개가 있어 익으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 인연- 태생이 다르다 ***  

   

 수련은 물속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을 살아가며 그곳이 세상의 다인 줄 알고, 단풍나무는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며 자신의 터전이 또한 세상의 다인 줄 알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이렇게 수련과 단풍나무는 서로 다른 곳에서 결이 다른 공기와 바람과 햇빛을 받고 살며 죽어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부모의 육신에서 떨어져 나간 유기체가 가을바람에 살포시 날아 수련 잎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남존여비가 두텁게 뿌리내린 경상도 터전에서 나고 자란 '갱상도남자'와 외동딸로 살아가며 집에서 만큼은 내가 중심이었던 충청도 여자가 수련과 단풍잎처럼 만났다. 처음 갖게 되는 낯선 설렘 속에 친숙하지 않던 그 남자의 억양, 흰 와이셔츠, 와인색 카디건, 밤색 양복 등 생경한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내 바운더리에 들어왔다.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며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지만 호기심 속에 설레기도 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도 그만큼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이 '갱상도 남자'는 결혼 전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치사하게 TV 채널을 가지고 싸우지 않을게!”

 “아이들이 태어나면 가정교육을 위해 꼭 존댓말을 쓸 거야!”

 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지만 경제적으론 많이 부족해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것 같았고, 인간성도 좋아 보였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어쩌면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는지 풍부한 상식까지 겸비한 이 남자를 결혼 상대자로 결정함에 있어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각자의 터전에서 적응하며 살아왔던 세월만큼 굳어진 관습과 가치관들은 굵은 선 하나를 견고하게 만들어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고 다름은 큰 걸림돌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각자에게 만들어진 굵은 선 하나는 모든 일들에 있어 각자의 기준이 되었고, 나와 다른 것은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포용은 있을 수 없었으며 타협은 신기루처럼 저 멀리에 있었다.   

 신혼초부터 의견이 맞지 않았던 일이 다반사이지만 사실을 아니라고 우겨대는 바람에 싸운 적이 많이 있는데 그중 육개장에 들어가는 토란대를 가지고도 꽤 오랜 기간 동안 다툰 적이 있다. 이 '갱상도남자'는 육개장에 들어가는 토란대가 토란이라 우겨대기 시작했다. 지금 같으면 당장 검색해 단번에 증명해 보일 수 있었겠지만 35년 전에는 책을 사서 보지 않는 이상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무조건 우기는 사람이 이길 때이다 보니 그냥저냥 넘어갔다.  

 결혼 30년이 지났을 때쯤인가 처음으로 토란대를 인정하는 것 같은 이 한 마디 툭 던지고 만다.

 “그기 뭐 그리 중요하노!”

 



 어릴 적 기억이라 지금은 기억도 아련하지만 내 고향 충청도에선 추석이면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었고 꼭 토란국을 끓여 먹었다. 밭에서 토란이 자라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고 토란의 모양이 둥글지도 않고 네모나지도 않은 울퉁불퉁한 모양을 하고 있고 토란국에 들어있는 토란은 미끌미끌하여 식감이 싫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어 정확히 알고 있는데 우겨대는 이 남자가 정말 어이없었다.  

 이렇게 결혼 전 달콤했던 약속들은 바다의 포말처럼 하얀 물거품이 되어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남자에게 나의 미래를 맡기고자 했던 결심은 내 생애를 통틀어 모험 중 최고의 모험이었던 것 같다.

 옛말에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그런 말이 나온 유는 콩이 들어있는 꼬투리 속에 열매인 콩이 없어도 들어있는 것처럼 볼록 나와 있기 때문에 나온 말로 제대로 상대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인데 그때는 내게도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대입 이혼을 해야 하나! 아니면 결혼을 다 시키고 황혼이혼을 해야 하나! 많고 많은 일들을 겪으며 애증이 가슴 저 밑바닥에 철갑처럼 켜켜이 쌓여 침전되어 있다가 바닷물이 한 번 씩 출렁일 때마다 찌꺼기가 하나씩 올라온다.

  하지만 환갑을 넘긴 남편이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땐 안쓰러움이 앞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혼 35년이 된 지금까지 시댁에서는 토란국을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추석에 만드는 송편도 충청도에서처럼 반달 모양이 아니고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동글 넙적한 두루뭉술한 모양이다. 그러니 토란의 줄기가 토란대 란걸 잘 모를 수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든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왔던 세월만큼 견고했던 벽은  조금씩 얇아지며 굳건했던 자신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며 가지고 있던 자신들의 색이 조금씩 흐려지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결혼인 듯하다.

 수련의 꽃말이 ‘청순한 마음’이라 하고, 단풍나무의 꽃말은 ‘자제, 은둔, 사양’이라고 한다. 청순한 마음으로 시작된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하였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조금은 자제하고 상대에게 부담스러운 것은 아량으로 사양도 하며 사는 날까지 노력이란 것을 계속해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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