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양상

by 솜다

지하철에서 나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할머니한테 어깨빵을 당했다. 서 있던 내 앞에 자리가 나니 앉겠다며 나를 밀친 건데, 나도 배울 건 배운 30대 초반의 사지 멀쩡한 여성이기에 그렇게 코뿔소처럼 뛰어오지 않아도 당연히 양보를 했을 거다. 너무 아팠지만 할머니를 상대로 싸우고 싶은 맘도 없어서 넘어갔다. 그리고 3분도 안되어 다른 할머니한테 또 당했다. 인생이 쓰다.



주말에는 영홍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슬프다고 전해왔기에 슬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슬퍼할 줄 몰랐다. 조부모와 이렇다 할 좋은 감정이 없는 나로서는 그 슬픔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웠나 보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울었다는 홍의 디엠과 블로그에 올라온 글에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홍의 할머니지만 나도 슬퍼졌다.



외할머니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가끔 할머니가 해주던 떡볶이와 빈대떡 생각이 난다. 살갑지 않은 손녀고 무뚝뚝하던 할머니였기에 많은 얘기가 오간 적이 없다.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기억도 그리 인상 깊은 것들이 아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슬펐지만, 엄마와 이모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더 슬펐다. 말이라도 많이 건네볼걸- 후회한다.



친할머니는 강원도에 계신다. 그리고 나는 그를 여전히 싫어한다. 얼마나 싫어하냐면, 그를 싫어하는 내 감정마저 아까울 만큼.



우리 집은 딸만 둘인데, 할머니는 숨 쉬듯 엄마에게 아들을 낳으라며 채근하고 징징댔다. 내 기억에 그 모습이 선명한 걸 보면 아마 내가 꽤 크고 나서 까지 그랬을 테다. 그 당시에도 내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 대는 할머니가 미웠다. 명절이면 나와 다희를 비롯한 여자 사촌들은 작은 상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남자들이 식사를 한 후에 가능했다. 머리가 크고는 이 상황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 이후로 치사하고 더러워도 큰 상에서 어거지로 밥을 먹었다. 나는 거기서 항상 입맛이 없었다. 나아가 우리 엄마 아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내가 좁은 상에서 밥을 먹는 거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할머니는 왜 우리가 외가에 가는 걸 그렇게 싫어했을까. 명절 연휴를 꽉 채워 친가에서 보내길 바랐다. 명절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아빠에게 외할머니 댁에 가자고 하는 나를 보면 '아빠 귀찮게 하지 말라'라고 했다. 손주들에게 주는 용돈도 성별에 따라 차등 지급했던 그는 내가 대학교 입학 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용돈을 요구했다. '과외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면서?'라며. 적을 수 있는 내용만 적었다. 술회하자면 끝이 없을 텐데 말이다.



어제 점식을 먹으러 들른 식당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시더니 너무 예쁘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고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 갱단 때문에 불쾌해진 감정은 혜인이한테 분노의 카톡을 함으로써 해소했다. 홍은 좋은 할머니가 있었기에 부러워졌다. 반대로 홍의 할머니도 홍이 같은 손녀가 있어서 행복하셨겠지. 외할머니를 더 사랑해 볼걸. 나의 친할머니는 이제는 용서해야겠다. 더 이상의 감정 소비를 멈추기 위해서. 나는 훗날 000 한 할머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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