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노잼일 땐 걸어나가세요

by 솜다




인생이 노잼이라 퇴근 후 전시를 찾았다. 성수동에서 진행 중인 <ways of writers: 작가의 여정> 팝업이었다. 최근 브런치 스토리에서 작가 어쩌고 하면서 글을 무려 3개나(?) 올린 나로서는 궁금한 전시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날따라 자꾸만 늦어지는 퇴근 시간에, 기존에 예약했던 시간을 취소하고 다시 한 타임 뒤로 미뤄 예약하기를 반복했다. 사무실 MZ를 자처하면서 '칼퇴가 아님 죽음을'이라는 신조와 함께 17시 땡 치면 사라지던 나는 왜 유독 이날 퇴근을 못 하게 되었을까. 이게 다 팀장 때문이다.


어찌어찌 퇴근 후 찾은 전시장은 겉에서 보았을 때 생각보다 조그마했다. 입구에서 예약 내역을 확인하며 스태프는 "혹시 작가님이신가요?" 하고 물어왔다. 그래서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대답하는 동시에 '오잉'이 머릿속을 스치며, 브런치 스토리에서 작가로 활동 중이냐고 묻는 거냐고 여쭸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도 '그렇다면 맞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입구를 지나 카운터 쪽으로 안내해 주시면서 방문한 작가들에게는 뭔 아이디카드 같은 걸 발급해 준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내 비록 거지꼴이었지만 사진도 찍고 출입증 머시기를 발급받았다.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재미나게 흐른다. 나보고 작가라니. 허허.


아까 말했듯이 생각보다 작은 전시라고 생각했는데 대충 둘러보고 시계를 확인하니 30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아직 못 본 게 많이 남았는데. 꼭 이럴 땐 시간이 빨리 흐르더라. 밖은 어둑어둑해져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재촉하다, 문득 날씨가 뭐 이리도 좋냐는 생각에 집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H를 만났다. 성수 주민인 H는 따릉이를 타고 왔다. 엄청 금방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장소를 잘 못 알려주는 바람에 오래 걸린 거라고 했다. 원래는 집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인데... 헛걸음하게 만든 게 미안해 근처 카페로 들어가서는 내가 사겠다고 하며 어른 흉내를 내었다. 지난번에도 그가 밥을 사준 게 기억났다. 그러나 H는 거절했다. 자기 동네까지 왔으니 자기가 사야겠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세상에, 아마 친구로서 H를 평생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남사친이라지만 근황 토크로 시작한 우리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들어간 카페도 예뻤다. 성수 '느좋' 카페에서 한 번에 테라스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퇴근은 늦었지만 분명 럭키한 날이었다. 한편에 심어져있는 (솔직히 촌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 에키네시아도 마냥 이뻐 보였다. 카디건을 걸치지 않아도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지 않고 딱 좋았다.

"너랑 오기엔 너무 예쁜 카페긴 하다."

"어떻게, 다시 나가?"

"안 돼, 여기 프토 팔잖아."

"프토가 뭐야. 프로토스?"

"프로토스가 뭐야. 프렌치토스트 말이야."

"스타크래프트. 남자들은 백 프로 프토라고 하면 프로토스라고 말할걸."


괜히 이런 게 궁금해져서 XY 밖에 없는 전자과 동기 톡 방에 물어보았다.

나: 프토가 뭔지 아니.

상기: 프로토스.


남자들이란.


인생이 노잼이라 찾았던 전시는 유잼으로 나를 인도했다. 이렇게 두 다리로 걸어나가 벗어날 수 있는 노잼의 굴레라면, 천 걸음이고 만 걸음이고 걸을 테다. 오늘도 느꼈다. 가만히 있으면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아, 중력에 의한 피부 처짐 정도는 가능하려나.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