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은 자동차 소유의 종말을 불러올것인가?
"모든 자동차 소유가 종말을 고할 것이다."
모빌리티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미래다. 스마트폰으로 자율주행차를 부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쿨하게 내리는 삶. 완벽한 효율, 합리적인 비용. 브랜드 전략을 설계하는 내게도 이 장밋빛 청사진은 꽤나 달콤해 보인다. 하지만 브랜드에서 인간의 욕망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나는 결코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그 효율성의 논리 뒤에는 거대한 함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묻고 답해보자. 우리는 차를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만 소비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미 수천만 원짜리 수입차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동차는 내 정체성의 가장 크고 비싼 확장판이다. 포르쉐가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할 때, 그들이 진짜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목적지에 갈까?"가 아니다.
"어떻게 포르쉐만의 '스릴'과 '지위'를 전달할 것인가?"이다. 브랜드는 결코 소유의 종말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소유해야만 느낄 수 있는 독점적인 경험을 더 뾰족하게 다듬을 것이다. 메르세데스 뒷좌석의 안락함은 공유 차량 앱의 럭셔리 등급 호출로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성역이다.
Sheer Driving Pleasure 슬로건을 사용하는 BMW는, 이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브랜드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운전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심지어는 판매장의 딜러들까지도 달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리뷰가 종종 올라온다. 차량 시승을 하러 갔는데, 딜러가 옆에서 "더 밟아보세요!, 이렇게밖에 못달리신다고요?" 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만약 미래에 자동차가 모두 자율주행에, 자동호출 기능을 탑재한 PBV 형태의 운송수단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카셰어링 로봇 택시가 도로를 가득 채운 미래를 상상해보라. 모두가 똑같은, 무채색의 효율적인 깡통차를 탈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외칠 것이다.
"나는 저들과 다르고싶어. 차별화 되고 싶어."
우리는 픽셀 하나, 폰트 하나에서도 차별점을 찾으려는 존재들이다. 하물며 내 몸을 담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동차는 오죽할까?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역설적으로 '나만의 공간'으로서의 자동차 소유 욕구는 더 강해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 나에게 맞춘 시트 포지션, 내 취향의 음악이 흐르는 완벽한 통제 공간. 남이 쓰던 셰어링 팟에서 느낄 수 없는 그 '완벽한 내 것'의 감각을 위해 인간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자동차 브랜드들은 어떻게 변화할까?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들은 더욱 더 뾰족하고 날카로운 고객층을 만들어 낼 것이다. 미니의 주 고객과 도요타의 주 고객층이 다르듯, 각자의 브랜드는 대중성보다 페르소나를 더 날카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지도 모른다. 현대,기아 같은 대중 브랜드들은 아래 사진과 같은 자율주행 운송 수단을 생산하는 생산자로써의 역할을 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테슬라가 현재 그 수순을 밟으려 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뿌리 깊은 '보여주기 문화'를 더해보자. 한국 사회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성공의 훈장이자 부의 척도다. 호텔 로비에 내릴 때, 사람들 앞에 설 때, 내가 공유 차량 앱을 켰는지 내 S클래스 차키를 쥐고 있는지가 주는 심리적 만족도는 천지 차이다.
자율주행 포드에서 내리는 '폼'은, 자가용 마이바흐 뒷좌석에서 내리는 '폼'을 결코 이길 수 없다. 허세와 자랑은 인간이 멸종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 본능이며, 자동차는 그 본능을 가장 화려하고 직관적으로 충족시키는 도구다. 이 거대한 심리적 시장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는 것은 지독한 오만이다.
요즘은 자동차에 '아파트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살지도 않는 값비싼 아파트 인증 스티커로 본인의 허영과 사람들에게 주눅들고싶지 않은 심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와같이 심리적으로 보여주고싶어하는 과시욕구는 인간에게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소유는 정말 필요 없어질까? 아니, 소유의 '형태'가 바뀔 뿐 '필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출퇴근이나 단순 이동은 셰어링이 담당할 수도 있겠지만, '이동하는 나만의 아지트'로서의 자동차 소유는 더 강력한 사치품으로 진화할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은 오히려 이 욕구를 가속화할 수 있다.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어지면, 차는 움직이는 거실, 침실, 혹은 사무실이 된다. 남이 쓰던 공간에서 잠을 자고 중요한 미팅을 하고 싶을까? 소유는 곧 '완벽한 통제권'을 의미한다. 인간은 내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럼, 운전이라는 노동이 사라지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될까?
우리는 이미 비슷한 풍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불과 100여 년 전, 말은 가장 보편적인 '운송 수단'이었다. 하지만 포드의 T 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하자 말은 도로 위에서 쫓겨났다. 그때 사람들은 마부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승마'라는 가장 우아하고 값비싼 고급 취미로 변모했다. 이제 말을 타는 행위는 이동을 위한 고단한 노동이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적 유희'가 되었다.
자율주행 시대의 '운전' 역시 정확히 이 궤적을 밟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가속과 감속을 통제하는 시대가 오면, 직접 핸들을 돌리고 기어를 변속하는 행위는 귀찮은 노동이 아니라 '기계를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원초적인 쾌감'을 사는 행위가 된다. 미래의 부자들은 자율주행 셔틀에서 내린 뒤, 전용 서킷이나 허가된 '드라이빙 존'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아날로그 감성의 스포츠카에 올라타 직접 엔진의 진동을 느끼며 질주할 것이다. 마치 현대의 자산가들이 주말에 승마장을 찾아 말과 교감하듯, 미래의 자산가들은 직접 운전대를 잡으며 '아날로그적 통제권'이라는 사치를 누릴 것이다.
결국 자율주행은 운전과 차량의 소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운전을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급 스포츠'의 영역으로 격상시킬 뿐이다.
자율주행과 카셰어링은 모빌리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인간의 욕망'에 의해 결코 소유의 종말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내 소유의 된 차키를 쥐고 싶어 할 것이고, 브랜드는 그 욕망에 새로운 세련된 이름을 붙여 우리에게 판매할 것이다.
소유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비싸고 우아한 사치품으로 진화할 뿐이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이동'인가, 아니면 그 이동의 순간마저 '내 것'으로 통제하고 싶은 욕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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