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단에 '브랜딩'이라는 춤을 춰야 합니까?
얼마 전, 리브랜딩 기획 중인 회의실. 공기는 무거웠고, 화이트보드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숫자들과 '글로벌 브랜드'라는 화려한 수식어만 가득하다.
이곳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쪽은 "그게 되겠어요? 지금 인력으로는 절대 무리입니다."라며 모든 제안에 찬물을 끼얹는 실무진, 다른 한쪽은 "3개월 안에 매출 50억 내고, ROAS 300% 달성하면, 3년 안에 500억 매출 가능해."라며 구름 위를 걷는 임원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이 배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니, 움직일 수는 있는 걸까?
무조건 안된다는 방패 측은 '뭐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 칭한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만난 그들의 본질은 현실주의가 아니라 '피로에 찌든 비관론자'에 가깝다. 그들이 "안 된다"고 말하는 진짜 이유는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낮아서가 아니다.
새로운 시도가 내 퇴근 시간을 늦출까 봐, 혹은 내 업무 바운더리가 늘어날까 미리 쳐두는 방어벽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과, 컴퓨터를 바라보는 시간을 추가하는 것이 고통이 된 사람들에게 '브랜딩'은 가슴 뛰는 도전이 아니라 그저 '귀찮은 일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파도가 무서워 항구에서 닻만 내리고 있는 배는 안전할지 몰라도, 결국 항구에서 썩어갈 뿐이다. '안 될 이유'를 찾는 것은 지성적 능력이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본능일 뿐이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 트라우마'가 낳은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봐야한다. 폭력적인 이상향이 반복되고, 그 결과로 "우린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패배주의만 남은 거다. 이 뒤틀린 트라우마는 결국, 어떤 일을 해도 "이렇게 해봤는데 안됐잖아. 실패했잖아." 라는 이야기들만 남는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필요한 실패'만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라우마가 남은 조직은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요즘과 같은 불경기가 찾아오면 어떻게 될까? 결국 모두 산산히 부서지는 것이다.
반대로 임원진의 '터무니없는 이상향'은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이다.
이들은 종종 브랜딩을 '마법'으로 착각한다. 실무의 메커니즘이나 현장의 리소스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멋진 레퍼런스 몇 개를 던져주며 "이거랑 똑같이, 그런데 더 빠르고 느낌있게"를 외친다. 우리의 브랜드가 아무에게도 알려져있지 않고, 아무도 소비하고 싶지 않아하는 상황이지만 '당연하게 소비해주는 시나리오'를 염두해둔다. 이들에게 브랜딩 초기 구축 단계에서 차근차근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심어나가는 행위는 사치라고 생각할 뿐이다. 무조건 IMC를 통해 100억, 200억 마케팅 비용을 들여 3배,4배의 매출을 일으키는 결과만을 목적으로 두고 움직일 뿐이다.
이것은 비전이 아니라 '공상'이다. 중력과 기압(실무의 한계)을 무시하고 풍선으로 하늘을 날겠다는 계획은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현장을 모르는 리더의 과도한 욕심은 실무진의 열정을 태워 없애는 '가스라이팅'이 된다. 3억 원의 가치를 3만 원의 리소스로 뽑아내겠다는 발상은, 결국 '예쁜 쓰레기'를 양산하는 지름길이 된다.
이 말은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주어진 리소스와 현실적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서 단계별로 올라가야 함을 시사한다. 상사, 고위 임원, CEO의 말에는 무게가 있다. 부서에도 전략기획을 담당하는 부서는 그 다음 하위 부서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이들의 의견은 더욱 뾰족하고, 전문적이어야하고, 때로는 비관주의자들보다 더 비관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향후 개선되어야 할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잘못된 이상향을 제시하는 순간, 조직은 '당연한 실패'라는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연료가 필요없는 엔진을 만들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이 될까? 지금의 전쟁도, 유가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안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엔진을 연료없이 가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고, 설사 그런 엔진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 엔진 개발자들보다 수십 배, 수천 배는 더 시간과 인력, 비용을 투자해야 함을 잊어선 안된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프로는 이 양극단 사이에서 '조율의 미학'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실무자는 비관 대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안 됩니다"가 아니라 "지금 리소스로는 여기까지 가능하니, 우선순위를 정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 전문성을 보호하면서도 조직을 움직이는 기술이다.
리더는 허상 대신 '지도'를 그려야 한다. "애플처럼"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이 이것이니, 이번 분기에는 이 지점만 명확히 전달합시다"라고 땅에 발을 붙인 목표를 줘야 한다.
애플, 나이키를 보며 허황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 안된다. 그들과 경쟁하며 사라져 간 무덤 속의 수 천, 수 만개의 브랜드들을 타산지석 삼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경영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브랜드를 결정짓는 것은 내부 인원도 아니고, 임원도 아니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이다.
혹시 당신의 팀은 지금 어디에 갇혀 있는가? 닻만 내리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급조된 통통배로 언제 부서질 지 모른 채, 원피스를 꿈꾸며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는가?
"안 된다"는 말로 스스로를 가두기 전에, 혹은 "무조건 해보자"는 말로 타인을 옥죄기 전에 딱 한 번만 물어보자.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 진짜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있는 결과물인가?"
결국 본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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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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