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들의 전성시대, 디자인의 비극

왜 우리는 점점 더 나쁜 디자인을 비싼 값에 치르게 되는가

by 김용화

어제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다. 꽤 유망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분이었는데, 대뜸 내게 회사 로고와 앱 디자인을 보여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디자이너님, 이거 5만 원 주고 크몽에서 만든 건데, 어떻습니까? 가성비 좋죠?"


화면 속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무료 스톡 아이콘을 적당히 비틀고, 유행하는 그라데이션을 덧칠한, 이른바 '예쁜 쓰레기'가 놓여 있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삼키며 "화려하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그 디자인이 왜 5만 원인지, 그리고 앞으로 그 회사가 치러야 할 리스크들과 '리브랜딩 비용'이 5천만 원을 넘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경제학에는 '레몬 마켓(Lemon Market)'이라는 용어가 있다. 미국 속어에서 레몬은 껍질은 노랗고 예쁘지만 맛은 너무 셔서 그냥 먹기 힘든 과일이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겉만 멀쩡하고 속은 엉망인 불량품을 뜻하는데, 대개 중고차 시장을 두고 '레몬 마켓'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1970년 조지 애커로프가 발표한 이 이론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고장 난 중고차가 판치는 시장을 의미한다. 구매자는 차의 엔진 상태를 모른다. 판매자만 안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구매자는 "어차피 고장 났을지도 모르니 싼값만 부르겠다"고 나서고, 진짜 좋은 차를 가진 판매자는 제값을 받지 못하니 시장을 떠난다. 결국 시장에는 싸구려 고물차, 즉 '레몬'만 남게 된다는 이론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대한민국 디자인 시장은 거대한 레몬 마켓이 되어가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가는 이 디자인 생태계의 불편한 진실을,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엔진'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가 엔진 소리를 듣고도 결함을 찾아내기 어렵듯, 디자인 시장에서 클라이언트(구매자)는 '좋은 디자인'을 판별할 눈이 없다. 이것이 비극의 서막이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그림'이다. 화려한 목업, 트렌디한 3D 그래픽, 시선을 끄는 컬러감이 그들에겐 전부다. 하지만 진짜 디자인의 가치는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메인터넌스'에 있다. 사용자의 동선을 치밀하게 계산한 UX 설계, 브랜드 철학을 시각언어로 치환한 논리, 개발 단계를 고려한 에셋 최적화, 그리고 미래의 확장성을 고려한 디자인 시스템 같은 것들 말이다.


문제는 이 '엔진'이 견적서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A라는 디자이너는 철저한 리서치와 설계를 바탕으로 1,000만 원을 부른다. B라는 디자이너는 핀터레스트에서 본 이미지를 적당히 베껴 겉만 흉내 내고 50만 원을 부른다. 비전공자인 클라이언트의 눈에는 결과물인 JPEG 파일 한 장만 놓고 보면 둘 다 비슷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자극적인 B의 시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A는 왜 이렇게 비싼가? 거품 아닌가? B에게 맡기자."


이 순간, 시장에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발생한다. 진짜 실력 있는 디자이너는 자신의 노력을 증명할 길이 없어 좌절하고 시장을 떠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단가를 낮춘다. 단가를 낮추려면? 리서치와 고민을 빼야 한다. 그렇게 '복숭아'는 사라지고 '레몬'들만 남게된다.


2. 템플릿이라는 달콤한 독사과


이 레몬 마켓을 가속화하는 것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플랫폼들이다. 미리 만들어진 템플릿 사이트, 최저가 입찰 경쟁을 부추기는 콘테스트 플랫폼들은 디자인을 공산품처럼 찍어낸다.


물론 템플릿 자체가 악(惡)은 아니다. 초기 자본이 없는 소상공인에게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고부가가치 영역까지 침범할 때 발생한다.


디자이너가 고민 없이 템플릿을 다운로드해 텍스트만 갈아 끼우고 납품하는 행위는, 중고차 딜러가 침수차를 세차만 해서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겉은 벤츠인데 시동을 걸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격이다. 이런 디자인을 받은 기업은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른다.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거나, 브랜드가 조금만 커져도 브랜드를 전면 재구축해야 하는 기술적 부채를 떠안게 된다.


하지만 시장은 잔인하다. "빠르고 싸게,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공급자가 넘쳐나니, 클라이언트는 "디자인은 원래 뚝딱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공급이 질적 저하를 일으키고, 저하된 질이 다시 수요의 눈높이를 낮추는 악순환의 고리. 이것이 바로 디자인 레몬 마켓의 민낯이다.


3. AI의 등장으로 빠르게 자라는 레몬들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는 이 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는 누구나 '그럴듯한' 이미지를 1분 만에 만들 수 있다. 미드저니가 뽑아낸 환상적인 이미지는 클라이언트의 눈을 현혹하기 딱 좋다.


"AI로 하니까 10분도 안 걸리던데, 디자인 비용 좀 네고해주세요~"


이 말은 디자이너의 직업적 자존감에 비수를 꽂는다. AI는 도구일 뿐, 문제 해결사가 아니다. AI가 뽑아낸 이미지는 맥락이 없고, 수정이 불가능하며, 브랜드의 고유성을 담지 못한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대화된 시장에서 클라이언트는 '결과물의 퀄리티'와 '생성 속도'만을 단순하게 연결 짓는다.


결국 질 나쁜 레몬들이 AI라는 고성능 비료를 맞고 시장에 쏟아진다. 포트폴리오는 화려하지만 실무에 투입하면 레이어 정리 하나 못 하는 'AI 오퍼레이터'들이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장을 교란한다. 진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디자이너들은 이 소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점점 더 힘겨워진다.


4. 신맛을 보는 건 결국 우리 모두다


레몬 마켓의 결말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와 있듯 '시장의 붕괴'다. 하지만 디자인 시장은 완전히 붕괴하지 않고, 기형적으로 변태하며 생존할 것이다. 질 낮은 디자인이 만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우리 주변의 시각 환경이 오염된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공공 디자인, 사용하기 불편한 앱, 철학 없이 복제된 브랜드들이 도시를 채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각적 폭력에 노출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둘째,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디자인은 비즈니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인데, 이를 단순히 '장식'으로만 여기게 되니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5만 원짜리 로고를 쓴 기업은 딱 5만 원어치의 신뢰감만 주게 된다. 소비자는 본능적으로 싼 티 나는 브랜드를 외면한다.


셋째, 유능한 디자이너들의 멸종이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인재들은 디자인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떠난다. 남은 자리는 사기꾼 기질을 가진 레몬 판매상들이 차지한다.


이것은 단순히 디자이너들의 밥그릇 싸움 이야기가 아니다. 디자인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삶의 질을 결정하는 인프라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불량 식품으로 가득 찬다면 건강을 잃듯이, 우리가 소비하는 디자인이 '레몬'으로 가득 찬다면 우리의 문화적, 경험적 건강도 잃게 될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크몽에서는 "로고 3만 원, 당일 완성"이라는 문구가 번쩍이고 있을 것이다. 그 유혹은 달콤하다. 하지만 레몬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시고 떫은맛, 그리고 뒤따르는 배탈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잘 익은 복숭아와 같다. 겉은 부드럽지만 속에는 단단한 씨앗(본질)이 있고, 베어 물면 풍부한 과즙(가치)이 흘러넘친다. 그런 디자인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 찾게 된다.


나는 여전히 믿는다. 결국 시장은 똑똑해질 것이고, 진심은 통할 것이라고. 썩은 레몬들이 아무리 향수를 뿌려대도, 진짜 복숭아의 향기를 이길 수는 없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레몬 더미 속에서 지쳐가고 있는 '숨은 디자이너'들을 알아봐 주길 바란다. 그리고 디자이너인 당신이, 껍질만 두꺼운 레몬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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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가 쓰는 글에 대한 반대 의견은 당신의 말이 100% 맞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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