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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sunlee Oct 14. 2024

Ketchikan

알래스카 여행에서 연어와의 만남


잔잔한 바다 위에 유빙이 떠내려가듯  찬바람을 가르며 유유히 앞으로 나아간다.


잿빛 하늘밑 수평선위에 길게 누워있는 만은  인간의 손이 미처 닿지 않아 야생의 기운을 머금고 자란 흑우나무와 자작나무가 경쟁하듯 땅을 차지하고 있어  반복되는 풍경이 지루할  즈음에   

멀리 검푸른 산등성이에 알록달록한 집들이 수를 놓고  정박한 크루즈선들이 고층빌딩을 옮겨놓은 양 둘러있어 때아닌 도시를 만난듯해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아울러 무슨 연유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나  하는 호기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막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 케치칸이다.



20여 층높이의 네대의 크루즈에서 수 천명의 관광객이 저마다 기대에 찬 발걸음으로 선착장을 향해  쏟아져 나온다.

선착장을 나서자마자 대하는 것은    연어낚시, 수상 비행기, 토템폴, 고래관찰  등등의 일일체험관광 사진으로 가득 도배한 가판대 안에서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고 외치는 소리가 시끌벅적한 시장통을 통과하는 느낌이다.  
군데군데 모여 가격흥정하는 모습이 우리네 시장에서 본듯해 정겨운 활기가 전해진다.


배에서 내린 그 수많은 관광객이 저마다 흩어져 케치칸을 꽉 채워가는 모습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인 양 자연스럽게 보였다.


이렇게 외지고 조그마한 마을에 때를 따라  연어가 몰려오니 전 세계에서 관광객도 몰려드는 것이 서로가 닮은듯해 케치칸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번잡한 광장을 벗어나자마자 언덕길에 Creek Street라고 쓰여있는 입간판 아래로 관광객들이 빨려 들어가듯 몰려가 우리도   뒤를 따랐다.

산등성이 경사면 끝에 계곡을 따라 나무기둥을 박아 설치한 보드워크.

계곡물이 흐르는 그 위로 기둥을 세우고 판자마루를 깔아 길을 내었는데  닳고 닳아 반짝이는 못들이 보드워크의 역사를 말해주듯 는 하다.


 각종 기념품 상점과 갤러리, 보석상들이 골목양편으로 자리해 드나드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특히 연어 가공식품점 통조림 무료시식이 있어  샘플을 맛보고자 늘어선 줄이 좁은 골목을 더욱 붐비게 한다.

골목을 빠져나와  탁 트인 보드워크 끝자락에 붉은색과 연두색의 집이 눈에 띄는데 그 집들은 오래전에 사창가로 쓰였던 집들이었다고 쓰여있었다.


그 옛날 은밀한 욕정의 장소가 지금은 기념품 상점으로 탈바꿈해  박물관의 소장품을 전시하듯  그 당시 사용했던 야한 골동품으로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니 이 또한 장사 속이 대단하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욕정의 흔적도 남아있어 실소를 머금게 한다.



바로 그 밑 개천을 내려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만 듣던 연어 떼를 볼 수 있었다.

설산에서 녹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 바다로 향하는 하구에 자리한 이곳은   산란을 위해 회귀하는 연어들이 꼭 거쳐 지나가야 할 길목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산란기인 8월부터 11월까지 팔뚝만 한 성어들이 떼를 지어 얕은 개울바닥을 누비며 오래전 떠나왔던 상류를 향해 오르는 연어 떼를 쉽게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수식어를 무색게 할 만큼 무리 져 감이 우리네 추석고향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전진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우리도 그 무리들이 향해가는 상류로 발길을 돌려 그들을 았다.

가는 도중에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도식간판이 있어 읽어보니 지금 바로 밑에 보이는 고기들이 그냥 고기같이 보이지 않았다.

2만 km의 여정을 돌아 4여 년간 바다에서 몸집을 키워 자기장과 냄새로만 자기가  태어난 바로 이곳으로 돌아온다 한다.
 더군다나 담수 개울에 들어서서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직 산란을 위해  모든 ( 곰, 물개, 독수리, 각종 해양포유류 등등) 위험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아마 가장 큰 위험은 우리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심을 갖고 연어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중 발견한 특이점은 바로 일방통행이었다


요즈음 뉴스마다 들려오는 소식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권력의 물결에 편승해 흘러가는 사람들, 이에 맞서 흐르는 물길을 돌리고자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오도 가도 못하고 파도와 소용돌이에 휩싸여 맴돌아 지쳐가는 혼돈의 시대를 보게 된다.

의를 위해 불의를 거슬러 오르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흐르는 물결 따라 시대의 흐름 따라 흘러가는 게 아니라 오직 상류 한 곳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의지가 부러워진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경외심 마저 느꼈다. 


 개울바닥이 맑은 유리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며 서서히 흘러내려오던  개울물이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쳐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너울져가고,  높은 곳으로부터  떨어져 내리는 물이 폭포수가 되어  가차 없이 내리치면  하얀 물보라가 허공에서 흩어지는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상류로 가려면 꼭 거쳐가야 할 연어들의 여정에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개천 난간에 몸을 기대어 줄지어 경쟁하듯 폭포에 오르는 연어를 보는 사람들이 로마 원형극장에서 검투를 구경하듯 표정들이 매우 진지하다.

하얀 거품을 내며 쉼 없이 밀려 내려오는 계곡물 가운데로 검고 반짝이는 것들이 튀어 오르다 물밑으로 사라진다.
그러면 이를 주시하던   구경꾼들의 안타까운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한결같이 앞에 가로막힌 성벽을 탈환하려는 병사들같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넘어서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잦짖잘못하면  급류에 휩쓸려 낙오가 되고 마는 가슴 조이는 카레이싱을 보는 것 같다.

 거친 물결에 부닥쳐 튕겨 나동그라진 고기는 다시 유턴을 해 바위옆 물살이 세지 않은 구석으로 모여들어  횟집 수족관에 가두어 놓은 활어같이 서로머리를 맞대고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바위에 긁혀 온몸에 상처로 얼룩진 연어는  조그마한 두 눈으로 앞만 주시하며 차례를 기다리듯 제자리걸음질만 하고 있었다.

 그 눈에서  과거에 겪었던 아픔을 보듯  연민의 마음이 되살아난다.
내 삶 속에서도 저런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려고 도전했던 적이 있었나? 뒤돌아본다.

영화 보기를 즐겨하던 나는 컴컴한 극장에 앉아 스크린 속에서  총천연색 대평야가 펼쳐지고 웅장하고 세련된 음악이 나를 압도할 때 전율을 느끼며 세상에 저렇게  멋진 세상도 있구나 하며 어려서부터 미국에 대한 동경과 막연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소개받은 여자친구가 미국으로 갈 사람이라는 걸 알고 더욱 그 만남을 긍정적으로 추진했고 1981년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안정적 기반을 마다하고 꿈을 안고 그녀와 함께 뉴욕으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다.
모든 게 서툴고 부족하지만  앞날의 기대를 꿈꾸며 하루하루 어려운 이민생활을 견디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예상치도 못한 쌍둥이가 태어났고 함께 일하던 와이프마저 일을 못하게 되어 갑자기 혼자서 온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쌍둥이를 집사람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부득이 처가 부모님이 거주하는 뉴저지 근방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직장은 뉴욕에 있는 인쇄소 광고디자인 담당으로 한국에서 배운 기술로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할 수 있었다.
2시간 거리의 출퇴근이었지만 그런대로 감당할만했다.

그렇게 빠듯하게 살아오던 이민생활에 들려오는 소식은 오일쇼크니 인플레이션, 취업률 하락 등등 반갑지 않은 소식들이 조간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오르내리더니  점차 일거리가 줄어들고  회사 분위기도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사장이 아침에 출근하는 나를 찾아와 심각한 얼굴로 할 이야기 있다는 것이다.

“ 미스터리 아시다시피 요즈음 우리 회사사정이 예전 같지 않아 너무 안 좋아 갑자기 말해서 미안한데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될 것 같아  미안해”

하며 하얀 봉투를 건네주며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닌가

 졸지에 당한 일이라 뭐라 대처할 수 없어 그냥 멍하니 서있었는데 머리가 하얘지더니  찡-하는 소리가 왼쪽귀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더니 가슴이 복받쳐 오르면서 눈물과 함께 흐느끼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서러움도 아니고 그 사정을 뻔히 아는 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서러워하지 하며 울음을 그치려 해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철없이 한참을 흐느꼈다.

그동안  말 못 할 두려움과 아슬아슬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누적된 피로가 그 한 마듸 말에  거센 물결에 부딪쳐 튕겨 나동그라지듯 주저 않고 말았던 것이다.
처음 당한 세상의 거센 물결이었다.
 
하지만 떨어지며 바위에 부딪쳐 온몸에 상처투성이의 연어는 굴하지 않고  물속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가   꼬리 치며 물 위로 올라와  온 힘을 모아 다시 뛰어오른다.  

험난한 폭포 너머의 개울 밑바닥에도 하얀 뱃살을 보이며 죽은 사체가 즐비하다.
힘들게 장애물을 넘었지만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힘이 없어 손을 놓고 말았던 것 같다.
더러는 운나쁘게도 물이 없는 맨땅에 떨어져 허공에서 파닥거리다 죽어 파리떼가 웅웅거린다.



크루즈 여행객 중 한 할머니가 잘 걷지 못해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끝까지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저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이 여행에 참여하고 있을까?
그 불편한 몸을 일으켜 걸어 나와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이 판에 나와  먼산 쳐다보듯 멍하니 쳐다보다 가는 것보다 나으리라 생각했으리라.
왜냐하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이기에.

 그야말로 하얀 상처가 온몸에 가득하고 지느러미와 꼬리가  하도 오래 써서 다 닳은 빗자루 모양 초라해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상류를 향해 꼬리질하는 연어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크루즈 탑승객과 험난한 바다를 거쳐 이곳에 다다른 연어가  서로 닮아있어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상류.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고향집?  

그들이 태어나 자란 곳?

왜 그곳을 그토록 가야만 했나?

궁금함이 커져가는데 더 이상 길이 없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유튜브를 검색해 그 이후의 생을 쫓아가보았다.
다행히도 생생한 그들의 삶을 찍어놓은 다큐멘터리가 있어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상류,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물살이 거세지 않고 바닥에 모래보다는 자갈이 깔려있는 곳이어야 했다.

또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은 연어가 알을 낳으러 온다 해 오르는 모든 연어가 암컷인줄 알았는데  암수 모두가 함께 오르며 암수의 구별은 부리모양으로 할 수 있는데 암컷은  유선형의 입모양인 반면 수컷은 갈쿠리모양으로 부리 밑부분이 휘어져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상류에 도달한 연어들 특히 수컷은 자기 짝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수컷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서로 눈이 맞으면 암컷은  꼬리로 조약돌들을 휘저어  산란하기 적당한 환경, 그들만의 신방을 꾸미고 서로 옆구리를 맞대고 나란히 선 다음 약속이나 한 듯이  전방을 향해 입을 쩍 벌리며  암컷은 알을, 수컷은 정자를 동시에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 눈동자는 허공을 주시하고 있어  온전히 사정에만 온 신경을 쓰며 황홀경으로 들어가는듯했다.

 알들이 자갈사이에 떨어지면 수컷의  희뿌연 액체 정자가 그 위에 살포시 덮으면서 수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고 기나고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들이 가고자 했던 상류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었다.

자궁.
처음이고 마지막인 곳이다.
연어의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밑거름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有終之美(유종지미) " 마지막을 아름답게 끝낸다 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하는데 연어의 생을 보며 있을 '(유)'가  아닌 남길 '遺(유)'로 대신하여 나머지 생을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내가 가고 있는 여행에 끝에  내가 남긴 으로 인해  어떤 시작을 위한  밑거름 내지는 선한 영향을 끼치었는가? 하며  자신에게 문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산란해야 할 나의 인생의 알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기대를 갖고 또다시 줄지어 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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