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ongsunlee
Dec 20. 2023
예정일 며칠 앞두고 진통이 시작돼 아침 일찍 옥스나드 커뮤니티 병원에 입원시키고 홀로 가게를 지키며 순산의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 연락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일단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 앞에 노트를 써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들어서니 낯선 실내환경 탓인지 때아닌 긴장감이 엄습해 온다.
물어 물어 찾아가니 널따란 병실 가운데 각종 의료기기가 부착된 침대에 엄마가 누워있었고 이미 3시경 너를 순산하고 지금은 회복 중이라 한다.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보니 아침부터 진통과 산통을 겪으며 지쳐 파리해진 혈색과 헝클어진 머리를 보니 그간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다.
옆으로 가서 손을 꼭 잡으며
“수고했어 힘들었지?” 하니 눈을 뜨며 가게는 어떻게 하고 왔냐는 표정으로 나를 맞는다.
이 와중에서도 모든 일상을 돌아보며 챙기는 엄마의 성격이 보여 피식 웃음으로 답했다.
7년 전 딸 쌍둥이를 낳고 키우느라 고생을 해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엄두도 못 냈던 엄마가 쌍둥이들도 컸졌고 가게도 안정돼 가 아들 하나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도하고 계획해 갖게 된 임신이었다.
옆에 있던 간호원이 아들이 보고 싶지 않냐 물으며 이층 신생아실로 가보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니 유리창안 신생아실에 여러 아이가 있어 손목에 찬 이름표를 확인하더니 하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 고와 들리지는 않지만 입모양을 크게 벌려
“ 하이 아빠 ” 하며 붉은 얼굴에 눈을 꼭 감아 더 작게 보이는 너와 인사를 나누라는 듯 창문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시키는 것이었다.
안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유리창을 통해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나눈 너와의 첫 대면의 순간이었다.
1989년 7월 7일 초저녁이었다.
바로 그 붉고 조그마했던 아이가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저녁을 하자하여 가던 차 안에서
“ 아빠 나도 이제 곧 아버지가 되는데 아빠로서 조언해 줄 말이 있으면 해 줄래요 “ 하는 것이었다.
의외의 대화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던 차에
먼저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 나를 초대하니 놀라기도 했고 너무 고마웠다.
그렇지 않아도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있을 때 약간의 흥분된 억양으로 나의 다음세대 돌림자는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지?
지금까지 느껴왔던 너의 태도가 다른 어떤 때 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과 신중하고 기대에 꽉 찬 느낌이어서 그냥 허트로 대답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로서 대답해 주기로 했었지.
글을 쓰려하니 ‘그럼 나는 첫아이를 가졌을 때 할아버지에게 어떤 조언을 구했나?’
결혼을 하자마자 약 6개월간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가는 바람에 그런 밀접한 관계를 지척에서 할 수없어고 편지로는 가능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후회되고 할아버지를 향한 자식의 도를 저버린 느낌이 들어 마음에 죄책감이 따르곤 했다.
특히 때를 따라 온 식구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너희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여행을 함께하게 되면 더욱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떠올라 나 자신이 부끄러워져 마음이 더 아파지곤 했다.
'나는 부모에게 제대로 하지 못한 것들을 받고 있으니'
하며 자조 섞인 혼잣말로 나 자신을 탓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할아버지임은 확실했다.
그전부터 나에게 보여준 할아버지의 면면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밀접하게 할아버지와 소통을 못한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에 가족 간에 필수조건으로 느낀 것은 바로 ‘소통‘이다.
가족은 관계의 지속으로 형성되는 공동체다.
내 가족이라 해서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소통을 게을리하면 그 관계도 자연히 멀어지고 삶 속에서 잊히기 마련이다.
가족이라면서 “사랑한다"는 말 한 번조차 못했다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름대로 사랑의 표현을 다른 형태로 나누며 살아왔을지는 몰라도 본인은 물론 상대방 역시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했다며’ 후회하는 걸 볼 수 있다.
아마 그들도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 소통이 아니라 사랑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조그마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도 오해를 하게 되고 서로 서먹서먹해져 그런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너와의 소통을 하기를 어느 때보다 원했던 적이 있었다.
네가 대학시절 나는 너와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아 직접적인 감정문제는 없었지만 엄마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어 너도 엄마도 힘들어하는 것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네가 정립이 되지 않은 인격체로 관계에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 같아 무언가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영어로서는 불가능해 편지로 쓰다가 마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말았다.
언젠가는 쓰던 편지를 마무리하리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네가 조언을 구한다 해서 그때와 지금의 생각을 적으려 한다.
‘소통’은 먼저 진실로 대하자이다.
세상 누구에게나 통하는 방법은 진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휘나 표현력이 모자랄지라도 진실이 담겨있으면 상대방은 느끼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 잘 수용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완전치 못해 실수를 범하기가 쉬운데 만일 실수를 숨기려고 거짓으로 대한다면 이 보다 큰 문제없으리라 생각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대한다면 관계에서 큰 상처로 남지 않을뿐더러 관계가 더욱 굳건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잦은 소통은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든다.
나는 요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며 지내는 중이다. 상대는 다름 아닌 손녀딸 쎄실리아다.
언제부터 인가 쎄실리아는 내가 지니네집을 방문할 때마다 유별나게 나를 따르며 놀기를 원해 손을 잡아 놀이방으로 이끈다.
그럴 때면 끌려가면서 무언지 모를 기쁨과 책임감을 갖게 해 자연스럽게 2살의 눈높이로 내려가 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쎄실리아랑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있음을 느끼게 하고 아무 말 없이도 소통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소통은 언어를 넘어 행위와 마음으로도 가능해짐은 물론 그로 인해 소통이 즐거워지고 잦아지게 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지니네집을 간다 하면 쎄실리아로 인한 설렘과 기대가 생겨난다.
세 번째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소통하라.
우리는 사랑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걸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행동을 할 경우가 즐비하다.
나 역시 그러했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엄마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대충은 안다 그래서 내가 애정표현을 할 때 긴장의 끈을 갖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
내 욕정이 나의 사랑의 표현대로 한다면 즉시 거부감을 유발해 원래의 내 의도를 놓치게 되고 만다.
내가 사랑의 소통을 원한다면
상대방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라.
배려와 절제의 소통을 상대방이 느낄 때 상대방은 온전한 소통을 습득할 뿐 아니라 관계의 기쁨을 느끼게 하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통은 인내를 요구한다.
인내는 교육으로도, 의지로도,
인격으로도 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만 가능한 속성이다.
나는 종종 엄마가 이부자리를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걸 보곤 한다.
그러다가 끝내 약장으로 가서 수면제를 복용하고는 새벽녘에나 이르러 수면을 취하곤 한다.
엄마가 너희들이랑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뒤 발생하는 후유증 중의 하나이다.
그러고는 아침이 되면 “내가 더 이상 그놈이랑 이야기하나 보자” 하며 속풀이 겸 나에게 위로를 바라는 마음으로 푸념을 한다.
그러고는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언제 그렇게 화가 났었냐는 듯이 또 너희들과 소통하고 너희를 위해 준비하고 너희를 기다린다.
이런 사랑의 인내는 하나님이 부모 된 사람에게 허락하신 은혜이다.
너 역시 이제 아버지가 되면 그런 마음과 인내를 허락하신 줄 안다.
하지만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지 못해 가끔 세상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사모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려고 힘써야 한다.
그러면 인내할 수 있고 사랑의 소통으로 관계를 아름답게 이끌 수 있다.
새로 태어날 ‘ 나오미'에게 그런 사랑으로, 인내로 소통을 해 아름다운 가족을 이루기를 기도한다.
네가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소통을 할 수 있게 해 나 역시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이로써 우리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폭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금 여기 하와이 로컬 방송에서는 “렛잇 스노 렛잇 스노”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뒤뜰 수영장에는 함께 휴가 온 지니네 온 가족의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트로픽칼 특유의 촉촉하면서도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들어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처음 경험해 보는 성탄계절 오후 한나절이다.
사랑한다. 경준
2023년 12월 19 일 하와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