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한다 1988 15] 좋은 길 되세요
헤어짐이란 알면서도 막상 닥치면 오묘한 감정이 든다. 산토 도밍고 알베르게에서 하비에르, 카일, 플로르 그리고 프랑카를 만났다. 하비에르와 카일은 워낙 체력도 좋고 걸음이 빠르고 부지런해 아침에 인사를 하고 나서는 하루 종일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그러고 나서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리보다 훨씬 빨리 도착해서 다시 만나곤 했다.
오늘도 걷는 동안에는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산토 도밍고 알베르게에서 만나게 되었다. 카일은 미국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고 하비에르는 스페인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스페인 군대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둘 다 겉보기에도 강해 보였다. 하비에르는 영어를 하지 못하고 우리는 스페인어에 능숙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100%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카일과 우현이가 통역을 해주거나 손 발을 써가며 의사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하비에르 : Hola ~ Bueno?~ 안녕 ~ 어떠니?~
충만 : Muy Muy Bien 아주 좋아 아주 좋아
하비에르 : Te gustas Embutidos? 너 순대 좋아해?~
준택 : Claro que si 당연하지
하비에르는 주로 혼자 걸으면서 주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지 않고 칼과 간단한 음식들을 들고 다니며 점심을 해결했고 저녁에는 알베르게에서 요리를 해서 저녁식사를 했다. 가끔 준택이와 종원이가 요리한 음식을 우리와 함께 먹었었는데 오늘은 그가 우리에게 스페인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거기다가 고기라니!~그리고 스페인에서도 순대를 먹을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다. 굉장히 축산업으로 유명한 스페인이니 다양한 요리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꼬치니요(새끼 돼지구이), 츌레똔(갈비) 같은 스페인만의 독특한 요리 기법이 적용된 음식뿐 아니라 쉽게 초리 소나 하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순대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먹게 되다니 참 반가웠다.
TIP 마트에서 고기를 구입할 때 원하는 부위를 쉽게 고르기 위한 간단 스페인어
목심 - neck - pescuezo
등심 - loin - lomo alto
갈비 - rib - costillar
채끝 - striploin - solomillo
안심 - tenderloin - lomo bajo
우둔 - topside / inside - cadera
설도 - butt & rump - tap contra
양지 - brisket and flank - falda
사태 - shin & shank - brazuelo
앞다리 - blade / cold - paletilla espalda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오늘일 줄은 몰랐다. 정말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이었지만 딱 하나 빠진 것이 있었다. 바로 종원이가 없었다. 첫날부터 마음 잘 맞는 동생을 만나서 약 10여 일 동안 하루 종일 같이 걸으며 먹고 자고 같이 했는데 오늘 저녁엔 종원이가 없었다.
종원이에게 걱정이 한 가지 있었는데 산티아고 콤 포스탈 라에서 비행기 일정이었다. 걷다 보니 지금 속도로는 비행기 일정보다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어서 오늘은 걷다가 결국 점심을 같이 먹고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종원 : 나 아무래도 오늘은 빨리 더 가야 할 거 같아
준택 : 왜?~무슨 일이야?~
종원 : 이대로 가면 산티아고에 늦게 도착해서 비행기 놓칠 거 같아
충만 :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갑작스럽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고민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내일부터는 못 본다니 뭔가 텅 빈 것만 같았다. 비 시즌이어서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첫날 대화를 하면서 친해졌고 눈보라 치는 피레네를 함께 넘으며 돈독해졌고 둘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사진도 서로 잘 찍어주는 여행 스타일이 잘 맞았어서 좋았고 참 감사했다.
충만 : 종원아 먼저 가면서 카톡 하고~한국 가서 또 보자
종원 : 그래요 다들 Buen Camino
Buen Camino라는 말은 순례자들 간의 '작별 인사'로 좋은 길 되세요와 당신의 길에 행운이 있기를 소망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작별 인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순례자나 현지인을 만날 때 Hello도 자주 쓰지만 스페인어로 Hola도 자주 쓰인다. 어렵지 않고 발음하기 쉽고 재밌어 가장 먼저 접하는 스페인어 중 하나다.
순례길에서는 어느 국적을 가졌든 순례자라면 대부분 인사를 잘 받아준다.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도 그냥 마주치거나 지나칠 때도 서로 가볍게 Hola라고 인사한다. 물론 대도시에서는 갈길 바쁜 사람들이 많기에 장소와 때에 따라 써야 한다.
길 위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갈 길을 갈 때면 남은 여정도 즐겁게 보내라는 뜻이 담긴 Buen Camino라는 말을 한다. 조금 친한 사이에서는 Hasta luego라는 다음에 보자라는 말도 사용하곤 한다.
그리고 어떨 때는 다시 보지 못하기에 Buen Camino라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한다.
다음 날 종원이는 우리보다 앞서 걷고 있었고 뒤를 쫓아 우리는 산토 도밍고를 떠나 벨로라 도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꽤 더운 날이었다. 오후가 되니 땀이 꽤 나기 시작했다. 이때 마침 쉼터가 있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은 가판대를 놓고 음료수나 과일을 팔거나 조가비 모형이나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된 형상을 물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판대 말고 카페나 바 그리고 집안에서 팔기도 한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카페는 아니었지만 개인이 다과와 음료수를 준비해놓고 자신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팔고 있었다.
주로 조가비 모형이나 노란 화살표 모형이 있는 배지, 목걸이, 팔찌 등이 있었고 음료수도 있었는데 액세서리는 정가에 팔았지만 음료수 및 다과는 기부로 운영하고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이다. 음료수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쉬며 재충전하고 또 다른 순례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내키는 대로 돈을 지불하면 된다.
알베르게 또한 공립, 사립 알베르게가 있는데 가끔 공립 알베르게는 기부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기부라는 말은 공짜는 아니다.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많이 내면 좋지만 적어도 5유로 이상은 내는 것이 좋다. 우리는 다들 음료수를 마시며 쉬고 수공예로 만든 액세서리를 구경하며 잠시 햇빛을 피했다.
그렇게 쉬다가 눈에 띄는 게 있었는데 여러 물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위에 종이에 영어로 필요 없는 물품은 이 곳에 놓고 가고 이 물품들 중 필요한 것은 가져가도 좋다고 써져있었다. 쉽게 말하면 물물교환일 수도 있는 무인 시스템인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이 막상 걷다 보니 필요 없는 경우도 있고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걷다 보니 날씨와 상황이 변해 필요 없어지기도 한다. 또 소모성 물품이나 약품이 갑자기 필요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나처럼 장갑이 필요 없어질 줄 알고 버렸다가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해인이처럼 스페인어 책, 무거운 침낭 등이 필요성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혹시 필요한 물품이 있을까 곰곰이 보다 보니 모자 하나가 보였다. 날이 풀리고 따뜻해지면서 오후가 되면 태양빛이 꽤 강했는데 준택이가 모자가 두 개라서 가끔 나에게 모자 하나를 빌려줬었는데 때 마침 모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자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걸었다.
어려운 것은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가 순례자를 배려하기 위해 만든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날도 따뜻하고 벨로라도 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어서 평소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틀 전 그리고 어제는 30km를 넘게 걸어서 꽤나 지쳐있었는데 오늘은 재충전하기 좋은 날이었다.
오늘 묵는 알베르게는 일하시는 분들이 알베르게에서 주무시는 게 아니라 6시가 되니 퇴근을 하셨다. 원래 알베르게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기 때문에 서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간단한 룰이 있다. 당연히 깔끔하게 사용해야 하고 너무 시끄러워서는 안 되고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 알베르게는 신기하게 복층 구조였는데 1층에는 작은 부엌과 거실이 있었고 2층에는 넓은 식탁이 있었다. 마지막 3층에는 순례자들이 잘 수 있는 2층 침대가 있었다. 이제까지 알베르게보다는 부엌이 작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리가 편한 음식을 먹기로 했고 관리자도 없고 식사 공간이 침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 평소와는 다르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놀았다.
마트에서 한 사람에 2.5유로씩 모아서 피자 다섯 판과 햄을 사고 돌아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 알베르게에서는 이제까지 못 보던 다른 순례자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리와 마르코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디에고 등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식사하면서 그때 나는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른 언어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건배였다. 우리는 식사뿐만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술 게임을 하며 더욱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분도 간단한 외국어를 준비해 순례길을 간다면 외국인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한국어 건배
영어 Cheers
이탈리아어 Cin cin!
스페인어 Salud
프랑스어 Santé!
독일어 Prost!
일본어 カンペイ (건배)
중국어 干杯 (깐뼤이)
그동안 비슷한 날들이 지겨웠었는지 다들 오늘만큼은 '흥'이 폭발했다. 하비에르는 기분이 너무 업돼서 갑자기 나가서 춤을 추고 한 명 씩 나오라고 하고 같이 춤을 췄었다. 다른 날과 다르게 오늘은 약간의 일탈을 하는 날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11시까지 신나게 놀다가 내일 또 걷기 위해 다들 잠자리로 들기 전 성균이 형의 노래를 듣고 잠을 청하러 갔다. 마침 기타가 있었는데 성균이 형이 기타를 집어 들고 숨겨져 있던 실력을 뽐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꿨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또 내일은 어떤 길을 걷도 누굴 만날까?
2016년 3월 12일 벨로라도
산토 도밍고 -> 벨로라도 22.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