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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05. 2023

D+8 고양이 코 고는 소리인가요, 골골송인가요?

오늘은 송이와 같이 자는 두 번째 날이다. 본격적으로 잘 준비를 하기 전에 송이가 사료를 얼마나 먹었나 확인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참치는 다 먹었지만, 건사료는 거의 먹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건사료를 거의 먹지 않았다. 다행히 참치는 입에 맞는지 싹싹 비우는 편인데, 아무래도 참치는 간식개념으로 주는 것이라 송이의 영양이 걱정되었다.


구조자님과 함께 어떻게 하면 송이가 밥을 더 잘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구조자님이 방의 구조를 바꾸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원래 이상적인 고양이 방은 물그릇, 밥그릇, 화장실이 모두 떨어져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 방이다. 하지만 송이의 경우 침대 바로 옆에 밥그릇이 있다 보니 나의 눈치를 보느라 밥을 잘 먹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새벽 1시의 어둠에 익숙해졌을 송이에게 미안하지만, 냅다 방의 불을 켰다. 일단 옷장 밑의 공간을 모두 비워두어 송이가 숨숨집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새로 산 2층 숨숨집으로 이어지도록 놓았다. 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밥을 편안히 먹을 수 있도록 옷장 아래에 물그릇과 밥그릇을 놓았다. 원래의 고양이들은 물그릇과 밥그릇이 같이 있으면 더러운 물이라고 생각한다던데, 구조자님께서 송이의 경우 길생활을 오래 하던 친구라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해주셨다. 그리하여 사진과 같은 방의 구조가 완성되었다. 사진 상으로는 검은 박스가 있는 부분에 스크래쳐를 설치하면 좋을 것 같아 새로운 스크래쳐도 주문했다.


새롭게 바뀐 방의 구조는 송이의 이동 경로에 맞춘 형태로 완성되었다. 캣타워 하나 놓을 자리도 없는 작은 방이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최고의 결과를 내놓은 것 같아 뿌듯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고 나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뿌듯해 쉬지 않고 친구들을 초대했을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이렇게! 우리 송이를 위해서! 기똥차게 꾸몄습니다! 동네에 플래카드라도 걸고 싶은 기분이었다. 집사들이 왜 나중에는 집을 모두 고양이에게 내어주고, 자신들은 구석에서 얹혀사는지 이해가 됐다.


송이를 데려오기 전에는 집사들이 자주 말하는 이야기를 보아도 남의 세상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그동안 접한 집사들의 행동 중 제일 신기한 것은 집 전체를 고양이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주는 것이었다. 고양이를 위해 멀쩡한 벽에 구멍을 뚫거나, 집의 빈 공간마다 선반을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신기하기만 했다. 고양이가 떨어뜨릴 까봐 선반 위의 물건들을 모두 치웠다던가, 아니면 아끼던 식물들을 모두 처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절대 집사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곤 했었다. 그랬었는데, 고작 방이 두 개인 집에서 방 하나를 고양이에게 전부 내어주게 되었다. 아니, 왜 송이가 방 2개를 다 활보하지 않는 가에 대해 한탄하는 사람이 되었다. 타인의 세계에 존재했던 사실이 나의 세상에 들어와 사랑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나도 그렇게 집사가 되어가나 보다.




가만히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내가 완전히 잠들었다고 착각한 송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독 토독. 송이가 밥을 먹는구나, 생각하며 잠에 들려고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중간에 송이가 한 번씩 켁켁거리거나 캬악거리는 것이었다. 송이가 아직 구내염이 낫지 않아서 밥을 먹을 때마다 통증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송이가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아침을 맞이했다.


밤 새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사료를 작게 갈아주자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송이 밥만 챙겨주고 생활용품점으로 향했다. 사료 알갱이가 작게 줄어들면, 송이가 조금 덜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발의 깁스를 단단히 채우고, 야채 다지기를 사러 떠났다. 부디 30분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내가 자주 가는 생활용품점은 프랜차이즈이지만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가게에 다 있는 제품도 그 가게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묘하게 정이 들어서 가끔 필요한 게 있으면 꼭 그 가게를 간다. 어딘 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생활용품점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면이 재밌으면서도 마음에 든다. 열심히 찾아간 곳에 내가 찾는 물건이 없으면 아쉽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물건을 발견할 경우 오늘의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다.


가게를 가기 위해서 숲길을 지나야 하는데, 숲길을 약 15분 정도 걷다 보면 가게에 도착한다. 집을 나와 숲길을 걷는데 벌써 가을이 온 것인지 아침 공기가 달랐다. 왜 사람들이 가을 아침에 대해 노래를 쓰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귀를 팔랑거리며 신나게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며, 우리 집에 있을 송이를 생각했다. (송이는 이때쯤 거실로 나와 바닥에 똥을 쌌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니 강아지마다 성격이 달랐다. 난 강아지도 무척 좋아하는데, 산책하는 강아지를 마주할 때마다 멀리서부터 강아지에게 열심히 신호를 보낸다. '나는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에게 와도 좋아!'라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데, 텔레파시를 무시하는 강아지도 있고 자신의 귀여움을 알아본 사람을 만났다는 사람에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강아지들도 있다.


검은콩 3개가 콕콕 박힌 강아지가 앞으로 다가오길래, 마찬가지로 멀리서부터 신호를 보냈다. 열심히 눈빛을 보냈지만, 그 친구는 앞만 보고 지나쳤다. 모르는 사람이 철 없이 좋다고 다가와도, 주인을 지키며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제법 의젓했다. 또 다른 강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공중에서 뛰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할머니가 있다면 "요새 사람들은 집에서 늑대도 키운가 보네..." 할 것 같은 모습의 아기 강아지였다. 그 친구는 아직 이갈이를 하는 중인 친구였는데, 내가 너무 좋다고 나의 손을 왕왕 물며 장난을 쳤다. 견주 분은 놀라시면서 급히 해명을 하셨고, 아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제어가 안될 정도로 뛰어다녔다.  잔뜩 신이 나 날아다니는 아이와 난감해하는 견주분을 보며, 머쓱한 나머지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고 빠르게 떠났다. 안 그래도 당황하셨는데, 이빨 자국 사이로 피가 나는 손을 보시면 뒤로 기절하실 것 같았다.


행복하게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원 없이 보다 보니, 가게에 도착했다. 다행히 내가 찾던 야채다지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두 가지를 구하러 가면 한 개는 없던 날들과 달리, 웬일로 이번에는 크기가 넉넉한 제품과 저렴하지만 조금 작은 제품, 이렇게 2종류가 있었다. 내가 이 가게에서 무엇을 살까 고민하게 될 줄이야.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운이 좋은 날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듬직한 야채다지기를 들고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해서 송이의 상태를 확인했고, 송이는 이제 집이 익숙해졌는지 하악질을 연달아했다. 무서워서 싫다 소리도 못하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 기가 좀 산 것 같아 보여 기뻤다. 송이도 점점 숨어 다니는 스킬이 늘기 시작해서, 사진 찍는 게 쉽지 않았다. 찍은 사진을 보니 안타깝게도 아직 구내염이 낫지 못해 혀를 내밀고 있었다. 또 이전 사진들과 달리 성이 잔뜩 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한참 웃었다.


오전에 할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는 데 고르릉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틀어놓은 재즈음악을 잠시 껐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착각한 건가 생각하던 참에, 또 작게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게 전설의 골골송을 부르는 소리인지, 아니면 코를 고는 소리인지 잘 구분이 안 되었다. 송이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노래 볼륨을 키우고, 조용히 핸드폰으로 녹음을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녹음본을 틀었다.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는 명확한 코 고는 소리였다. 요 며칠 나랑 같은 방을 쓰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정신없이 자는 모양이었다. 내가 옆에 있으면 늘 긴장을 풀지 못하던 송이가 코를 골며 잠에 들다니! 감격했다. 감동한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송이는 조금 더 큰 소리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재즈음악에 맞춰 들리는 송이의 코 고는 소리는 꽤 편안했다. 간만에 숙면을 취하는 송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송이야, 좋은 꿈 꾸길 바라. 엄마 나갔다올께." 며칠 사이에 익숙해져버린 인사를 건네며, 그렇게 나의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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