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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12. 2023

D+14 ‘도둑’ 고양이와 동거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글의 주제가 옷장 속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고양이에 대한 것이라면, 문제는 조금 심각해진다. 글을 쓰는 것이 유달리 힘든 날이면 송이가 몰래 나와 사고라도 좀 쳐 주길 바라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바란 꿈은 아니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의 바람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고백하자면, 선선한 날씨로 가슴이 설레는 가을임에도 나는 보일러와 에어컨을 동시에 트는 미친 짓을 하며 지내고 있다. 감기 기운이 있는 송이를 위해 보일러를 틀었지만, 겨울이 좋은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실내 온도 30도는 너무 더웠다. 가끔 친구들이 집사가 살아야지 송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곤 했었는데, 송이를 위해 나도 살 길을 찾기로 했다. 따라서 송이와 같은 방에서 동고동락하는 순화 프로젝트는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송이는 보일러가 따뜻하게 올라오는 옷방에서, 나는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거실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침에 커다란 지도가 그려진 매트리스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이불이나 베개는 모두 거실에 있었기에,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전에 매트리스를 버리며 얻은 뼈저린 교훈으로 인해 매트리스에 방수 커버를 씌워두었다. 실은 처음에 오줌의 양을 보고 방수 커버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매트리스는 다행히도 안전한 상태였다. (방수 커버 제작자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 전의 다른 날들은 송이가 오줌 실수를 해도 아예 화가 안 났는데, 오늘은 살짝 짜증이 났다. 송이와 함께하면서 짜증이 났던 적은 없었기에 스스로에게 놀랐다. 고양이의 삶과 인간의 삶이 너무 다른데, 인간의 기준에 맞춰서 고양이에게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미성숙한 행위라고 생각하기에 화가 나는 일은 없었다. 허나 오늘은 달랐다. 머리로는 고양이이기에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슴은 머리와 동떨어져있기에 훅 치고 올라오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사람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을 꺼내보아도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기억보다 앞서지는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기 때문에, 할머니는 간혹 나에게 짜증을 내곤 하셨다. 그 시절, 나는 너무 어렸기에 그런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흑백티비 보듯이 바라보곤 했었다. 그 시절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어린 시절의 기억에 색이 물들여졌다. 송이를 만남으로써 사람하고의 추억에도 온기가 생기고 있다. 비인간 동물하고의 관계는 인간 사회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나 보다.




주변 지인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보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글을 쓴다고 답한다. 아직 출판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집필에 집중해야 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것처럼 살고 있다. 그리하여 점심을 먹고 나면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집 근처에도 카페는 많지만, 굳이 버스를 타고 20분을 이동해야 하는 학교 인근의 카페로 향한다. 정류장에 멈춰 서는 버스들 중 버스가 가장 오지 않는 노선을 타야 하지만, 가만히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 시간도 나쁘지 않다.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만약 카페에 가는 이유가 밀린 과제를 하기 위해서였거나 혹은 마지막까지 회피했던 업무를 보기 위해서였다면, 카페에 가는 일은 살기 위하여 혈관에 카페인을 수혈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페에 가는 이유가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이 행동은 제법 낭만적인 일이 된다. 미시시피의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침 원고를 마감했을 마크 트웨인, 스코틀랜드의 어딘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법의 세계를 그려나간 J.K 롤링,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송이의 집사, 김지연. 전 세계의 유명 작가들과 똑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글이 막혀 머리를 쥐어뜯는 순간에도 근사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오늘은 학교 근처의 고양이 카페인 카페 무네에 갔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의 귀여움에 반해서 찾아갔는데, 이제는 공간 자체의 매력에 반해 자주 간다. 그곳은 ‘고양이 카페’라고 했을 때 흔히 상상하는 품종묘를 전시하며 동물을 재화 취급하는 변형 펫샵이 아닌, 집사인 사장님이 구조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이다. 해당 카페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펫샵과 품종묘 소비하는 차원에서 가는 곳이 아님을 구태여 구구절절이 설명하곤 한다. 열심히 해명하는 나의 모습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유난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나는 펫샵 소비나 품종묘 소비를 지양하고 있는 삶을 조심스럽고 불편한 주제가 아닌, 일상 속 대화로 녹여내는 순간이 참 좋다.

카페 곳곳에는 고양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카페의 규칙이 부각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카페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을 예뻐하면서도 동시에 아이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작은 동물을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카페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가끔 고양이를 구경하다가 손님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서로 ‘고양이가 너무 귀엽죠‘라는 생각을 공유하며 미소를 주고받곤 한다.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손님들을 구경하고, 또 카페에서 쉬는 모습을 보며 송이가 생각났다. 사실 굳이 카페가 아니더라도, 유튜브에서 집사들과 함께 사냥놀이 하는 영상만 봐도 송이가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아니, 거실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자동 급식기에 나오는 사료를 먹으러 달려가는 모습을 봐도 송이 생각이 난다. 우리 송이는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진 새벽에야 겨우 밥을 먹기 때문이다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송이를 보면 꼭 ‘도둑’ 고양이 같다. 송이는 낮에는 숨숨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다가 밤 11시가 되면 그때야 숨숨집에서 밥을 먹으러 나온다. 저녁 8시부터 밥그릇에 사료는 채워져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러 간 후에야 송이는 하루를 시작한다. 그마저도 중간에 거실에서 소리가 들리거나 혹은 방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으면, 아예 입도 대지 않는다.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송이는 밥그릇에 놓인 참치를 몰래 도둑질해 먹는다.

송이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상처가 아쉽다거나, 애교를 부리는 다른 집고양이들을 보면 부럽다거나 그러지는 않다. 다만, 사람이라는 존재로부터 사랑을 느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꼭 송이 생각이 난다. 13평의 방에서 참치를 도둑질하는 송이, 그런 송이가 밝은 대낮에 그렇게 좋아하는 참치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쓴 약 가루도 필요 없는, 맛있는 참치캔을 혼자서 다 먹었으면 좋겠다.



“손 해봐 손!” 옆에서 츄르를 들고서 고양이에게 손을 훈련시키는 사장님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 사람들이 북적이는 카페에서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것부터가 저쪽 친구들도 보통 고양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천재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집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참고로 송이는 내가 핸드폰을 하고 있으면 자는 줄 알고 몰래 나와 밥을 먹기도 한다. 심지어 오늘은 밥을 먹고 신이 났는지 스크래쳐도 북북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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