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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Oct 20. 2023

2. #지인능욕해드립니다

20201012


[트리거 주의] 본문에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습니다.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읽음에 있어 주의를 권합니다.




앞에 하던 팀플 과제가 늦게 끝나 30분 정도 늦게 시작했다.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턱 막혔다. 마치 내 발로 지옥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순간 스쳐지가는 감정이였기에 일단 무시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확실히 어제 어느정도 작업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셋팅해놓아서 준비 시간이 적게 걸렸다. 어제는 지인 능욕 중심으로 했으니 이번에는 미성년자 포르노 영상을 기반으로 작업하기로 했다. 그런데, 미성년자 포르노 영상을 검색하니까 성인사이트 홍보가 중심으로 떴다. 주로 개인 계정 중심으로 작업해서 살짝 당황했다. 이걸 신고해도 신고가 될까..? 라는 의문이 들어 내일 물어보고 다음 번에 작업하기로 미루어두고, 일단 어제 하던 것처럼 개인이 진행하는 디지털성폭력을 중심으로 신고하기로 했다.

어제와 달리 지인 능욕을 진행하는 계정을 찾기 쉬웠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할지언정, 지인능욕을 실제로 행하지 않는 한 경찰은 혐의가 없다고 할 것 같아서 가능한 사진이 올라와있는 계정 중심으로 하기로했다. 경찰 신고 후 내부 신고도 같이 진행했는데, 지인능욕을 의뢰하고 판매하거나, 성착취영상물을 사고 팔거나, 아니면 성매매알선과 관련된 신고 항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트위터 본사 측이 발전해서 불법촬영물에 대한 신고항목이 생긴 것으로 아는데, 그마저도 사진이 첨부되어 있을 때만 가능한 사안이었다. 그러니까 트위터에 있는 수많은, # 지인능욕해드립니다 # 암캐구해요 # 로리영상구해요 # 노예녀자위영상팝니다 이런 해시태그 글들에 대해서는 마땅히 신고할 수 있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신고를 할 수 있다면, 불쾌감을 조성한다 혹은 해시태그를 빌미로 스팸으로 신고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러한 종류의 디지털 성폭력이 스팸으로 취급당할 수 있는지, 왜 이런 선택지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지 내부신고를 진행하면서 화가 끓었다. 이러한 디지털 성폭력영상들을 구하는 건 어제 썼듯이 특별한 절차가 전혀 필요 없었다. 이러한 디지털성폭력물을 구매하는 건 짚 앞 마트에서 우유를 사는 것보다도 쉽게 이루어졌다. 트위터 본사는 대체 왜 디지털 성폭력이 자사의 플랫폼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왜 방치하고 있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세간에서는 본래 페이스북에서 진행되던 성착취 판매 및 구입 사업이 막히자, 해당 사업이 트위터로 넘어오면서 트위터가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동안 트위터를 하면서 디지털 성폭력이나 성영상물을 접할 때마다 열심히 신고했는데, 신고해줘서 감사하다는 안내 메세지 외에는 어떠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험들이 생각났다.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서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대처하고 있는 트위터의 행태를 보았을 때 이런 루머가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고할 계정들을 검색하다보면 가끔 정말 난감한 상황에 마주한다. 바로 노예녀를 자칭하는 계정들이다. 물론 이 계정을 운영하는 건 남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이름으로 성기가 노출된 사진이나 자위영상을 판매하고 있는 계정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중 충격 받은 건 자신이 n번방의 박사방 노예라고 적어둔 영상이었다. 이러한 피해자들은 대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일까, 이 계정을 운영하는 운영자는 대체 어떤 놈일까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왜 이 여성들은 이러한 성범죄에 노출되었고, 무슨 사유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가부장제가 어디까지 여성을 갉아먹었길래 이러한 자기학대의 사실을 자신의 욕구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밖에 없었을까. 많은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n번방 사건을 잠입취재한 추적단 불꽃분들이 생각이 많이났다. 나중에 꼭 한번 추적단 불꽃 분들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결국 나는 자신을 박사방 노예라고 소개한 계정을 화면에 띄워두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창을 닫고, 다른 계정을 찾았다.

가끔 이러한 모니터링 작업과 관련된 나의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어느 순간 막힌다. 내가 보고 접하는 것들에 비해 언어라는 도구는 한없이 작게 느껴지곤 한다. 디지털성폭력이 왜 문제이고 어떤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지를 쓰고 싶지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기분이 들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더 넓히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그리하여 여성학 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여성운동가가 꿈이지만, 현실과 꽤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여성학계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학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이 약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머릿 속에서 떠다니는 생각들에 대해 실체를 부여하고자 여성학 공부를 찾게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여성혐오의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여성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통해서 여성학 공부의 필요성을 되새기고 있다. ​


트위터에 지인능욕 계정들을 찾던 중 불과 몇 분 전에 올라온 홍보글들을 보았다. 지금 나는 지인능욕 범죄들을 찾고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켠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홍보 트윗들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산다는 게 뭐길래,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는 디지털성폭력을 팔아서 돈을 챙기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런 범죄들을 찾아내 경찰에 신고하고, 그리고 한 편에서는 처벌 기준이 될 법이 없다는 이유로 신고자료들이 기각시키고 있겠지. 본래 내가 디지털 성폭력보다는 반성매매에 관심이 더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쏟아지는 디지털성범죄 컨텐츠들과 처벌이 불가하다는 결과들 사이에서 내가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쪽에서 근무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지금 하고 있는 걸 보니까 잘 버티고 있는 듯하다.

지인능욕 관련 계정을 찾다, 지인능욕 사진들을 올려놓은 계정도 찾았다. 기계적으로 자료를 캡쳐하고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진행하다 계속해서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이 맴돌았다. 왜냐하면 해당 사진들은 누가봐도 인스타그램에서 퍼온 것 같은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계정 운영자는 인스타에서 퍼온 사진들과 함께 해당 피해자에 대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성희롱을 같이 적어두었었다. 하지만 나는 트위터 신고항목 선택지에서 길을 잃었던 것처럼, 막상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하려고 하자 길을 잃었다. 이런 경우 그나마 신고할 수 있는 건 명예훼손이었다. 이제는 그래도 3자 신고가 가능해져 신고라도 넣을 수 있는데 불과 몇 일 전까지만해도 당사자가 아니면 신고조차 진행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성범죄를 접하고 길을 잃고, 그렇게 스러졌겠지. ​


주변에 지인들이 불법촬영으로 인해 경찰서를 다녀온 적이 있기 떄문에, 그리고 나 자신도 명에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고소결과는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비록 누군가의 얼굴 사진을 떡하니 걸어놓고 다리 벌리는 보지년, 강간당하는 걸 즐기는 걸레년 이런 말들을 쏟아냈지만 그 새끼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최소한 디지털 성범죄 관해서는. 왜냐하면, 현재 디지털 성폭력법에 의하면 피해자의 신체 성기가 드러나지 않은 이상 음란물로 취급당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저 새끼는 처벌 받지 않겠지. 설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다고 할지언정, 그 형은 벌금 몇 십만원에 불과한 결과일 것이다. 아마도 초범이라던지, 가해자가 어리다던지, 반성을 하고 있다던지 갖은 이유를 들며 그마저도 기각, 혹은 로또보다 더 좋은 운이 함께한다면 집행유예가 나오겠지. 아니, 애초에 저 새끼를 잡을 수나 있을까?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로 잡을 수 조차 없다는 말만 던져주겠지. 이 모든 과정에서 결국에 남는 건 피해자의 사진과 고통 뿐이라는 걸, 이미 나는 뼈져리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저 사진의 피해자가 누군지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무시하고 경찰 신고만 하려고 했다. 피해자에게 연락해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피해자에게 알려도 될 사안인지도 모르겠고, 경찰에 신고해보았다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만 받았을 때 피해자의 상황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사진만이 첨부된 링크만 가지고 경찰이 과연 피해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냥 이건 못 찾아요,라는 말 한마디로 그렇게 이 일이 끝나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일단은 피해자의 SNS 계정을 찾아보기로했다.

이렇게 유포된 사진의 원출처(피해자)를 찾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구글 이미지 검색을 돌리면 인터넷에 올라온 해당 사진과 동일한 사진들이 올라온 링크들이 검색 결과로 뜬다. 한 장, 다음 장, 또 한 장. 점점 다운 받아놓은 사진 수는 줄어들지만 검색 결과는 뜨지 않았다. 결과가 뜬다고 할 지언정 같은 사진으로 다른 계정에서 올라온 지인능욕 사진들 뿐이었다.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내가 찾은 게시글은 지인능욕으로 불과 올라온지 일주일도 안된 사진들이었어서 피해자가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은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비슷하지만 다른 사진을 찾았다. 한눈에 보아도 내가 다운 받은 사진의 피해자의 SNS 계정이었다.

그 순간 머리가 새하애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하지..? 피해자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단 혹시 모르니 피해자의 사진이 올라온 게시글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캡쳐하고 나니, 내가 뭘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고, 담당 선생님께서 내부적으로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할지 회의해볼테니 해당 게시글만 별도로 경찰에 신고를 넣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최대한 법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활용해서 사이버수사대 신고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피해자의 SNS에는 이미 지인능욕으로 올라왔던 사진들이 모두 내려가있어서, 혹여나 피해자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피해자는 괜찮을까? 피해자분 혼자서 경찰을 찾아갔을 때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지, 그리고 그 앞에서 어떤 무력감을 느꼈을 지 그려졌다. 경찰에 이미 찾아갔지만 결국 성폭력으로 처벌 할 수 없다는 결과만 받아서 자포자기한 심정만은 아니시길 간절히 빌었다.

해당 피해자의 작업을 마무리하니 오늘 작업하기로 한 시간이 끝나있었고, 오늘자 디지털모니터링단 작업을 마무리했다. 비록 작업을 하는 내내 여자친구와 전화를 켜놓은 상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멘탈 유지를 했지만, 그래도 어제에 비해 훨씬 괜찮은 상태로 작업을 진행했다. 아쉽게도 작업하는 속도는 여전히 성에 안 차는 속도였고, 머리는 여전히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디지털모니터링단 작업이 내게 남길 수 있는 건 트라우마와 이를 악물고 버티는 힘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작업은 나에게 여성혐오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힘도 같이 주었다. 비록 디지털성범죄가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그 세상 속에서 내가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힘이 되었다. 디지털모니터링단 작업을 하기 전까지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는 거대한 쓰레기장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원래 이런 세상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매일 마주할 디지털성범죄의 쓰레기장은 너무나도 거대하지만, 그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내가 작은 힘을 가지고 맞설 수 있다는 사실은 작은 용기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 내 마음 속에 심어둔 씨앗이 모니터링단 작업이 끝나면 어떤 나무로 성장할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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