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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따봉 Jan 30. 2024

D+127 임시 보호는 임종까지 보호의 줄임말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을 이야기지만, 2024년 4월까지 단기임보 신세였던 송이는 입양전제 임보로 바뀌게 되었다. 별 일이 없는 한 임종까지 임시보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신세이기에 '임시보호'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지면, 언젠가 임시라는 말도 떼어낼 수 있길 바라본다.



언제나 '도둑 고양이'라는 단어처럼 도망다니던 송이가 뻔뻔하게 자기 집처럼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될 수 있길 기도했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일이지만, 그때는 무척이나 간절한 마음으로 빌던 소원이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요즘 일상이 되었다. 아직도 송이는 사람의 발자국을 무서워해서 후다닥 도망다니느라 바쁘지만, 눈치껏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소파를 차지하기도 하고, 거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들기도 한다. 나의 움직임은 무서워서 가까이는 오지 않지만, 내가 일을 보고 있으면 꼭 내 곁에 앉아 그루밍을 한다. 바로 옆은 아니고, 방의 끝에서 다른 방의 끝의 정도의 거리에서. 



사람의 욕심은 끊이 없는 것이 기본이니까, 이제 송이가 사람의 발걸음을 무서워하지 않길 기도해본다. 아니, 조금 더 욕심부려서 나의 품에 쏙 안기는 고양이가 되길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이루어지는 소원이라는 점에 있어, 어쩌면 나의 기도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매달리는 마음이 아닐까. 가능한, 이 이야기의 끝이 나지 않았으면 바라본다.





송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한 치 앞을 모르는 고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고양이가 이래? 할 정도로 바보 같은 고양이가 바로 송이이다. 신은 송이를 만들 때 호기심을 잔뜩 붓고 겁도 잔뜩 넣어준 것 같다. 예를 들면 자기한테 관심 달라고 울어도 절대 관심 주지 않는 집사가 두드리는 키보드가 궁금해서 책상 위까지 뛰어올랐지만, 바로 앞에 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내 얼굴을 1초 보고 놀래 뒤집어져서 다시 내려갔다. 



주로 내가 시간을 보내는 곳은 거실이다보니, 마찬가지로 송이도 거실에서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거실에서 송이가 마땅히 숨을 곳이 없어보여서, 고양이들이 가장 잘 쓴다는 숨숨집을 사주었다. 하지만 송이는 겁이 너무 많은 나머지 숨숨집은 신기해서 냄새는 킁킁 맡아보지만, 정작 숨숨집 안이 무서워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5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산 숨숨집은 결국 새것의 상태 그대로 반품행이 되었다. 고양이들이 환장한다고해서 열심히 업어온 아이 수유 쿠션도, 푹신한 질감이 무섭다는 이유로 그대로 고인돌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송이가 그래서 좋아하는 숨숨집은 어디인가, 하면 바로 의자 밑이다. 의자 등받이에 추울 때면 자주 옷가지를 걸어두는데, 거기서 생기는 그림자가 송이의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그래서 내가 소파에 누워있으면 송이는 의자 밑에서 쉬고, 내가 의자에 앉아있으면 송이는 소파에서 쉬곤 한다. 그런 거리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겹쳐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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