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자따봉 Apr 19. 2024

D+207 (구)송이는 따봉이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송이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나는 송이랑 평생 같이 살게 될꺼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송이가 언젠가 고양이별로 가게 될텐데, 그 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현실적으로도 내가 고양이를 입양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만 떼어놓고 본다면 무리인 일이 맞긴하다. 아직 수입도 없는 대학원생, 사회에 자리도 못잡은 상태,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아직도 내가 입양을 하는 게 맞나 고민이 된다. 그래서 일단 취업을 하기 전까지는 임시적 입양 상태로 해두고, 취업하자마자 바로 입양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고양이와 같이 살아가는데, 나도 어떻게든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송이는 나와 함께 평생 가족으로 살게 되었다. 그동안 떠돌이 신세였던 임시보호가 아닌, 함께 잘 살자는 의미에서 이름도 새롭게 지어주었다. 바로 팔자 따봉하라는 의미의 따봉! 애인이 이런저런 이름을 추천해줬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입에 찰떡같이 붙는 이름이라서 따봉이로 개명해주었다.


사실 따봉이를 입양하게 된 경위는 좀 특이하다. 원래 4월까지만 단기임보의 형태로 임시보호를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따봉이 상태가 다른 곳에 보낼 수가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도배 장판을 모두 새로 하고 나가겠다는 제안을 하고, 입양 전제 임시보호로 지내기로 결정했다. 사실 입양은 아예 선택지에도 없었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시간동안 따봉이와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결정도 쉽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 집사인 친구의 조언이었다. 내가 따봉이를 입양 보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 친구는 ‘아냐 언니가 키워야할 것 같아’라고 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언니 따봉이 입양가면 100% 파양당해


친구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다. 따봉이는 어린 고양이 아니고, 성묘인데다 소위 말하는 “예쁜 고양이“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하악질하며 도망다니느라 바쁘고, 심지어 츄르를 줘도 받아먹을 생각보다 츄르를 때릴 생각이 앞서는 아이다. 어제 길에서 주어왔다고해도 어색하지 않을 아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잘 데리고 살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설사 입양 가더라도 파양 당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안타깝게도 고양이를 애교부리는 장난감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따봉이가 순화가 완전히 될 때까지는 계속 데리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따봉이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도저히 따봉이를 다른 사람한테 못 보낼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무서웠다가 겨우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인데, 이 애를 대체 누구한테 어떻게 보내나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러던 중 구조자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구조자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바로 내가 따봉이를 이미 입양했다고 생각하신 것이었다. 나는 수백만원에 드는 병원비를 감당할 환경이 되지 않기에, 여전히 입양전제 임시보호 상태라고 생각하셨는데 아마 서로 생각이 엇갈렸던 것 같다. 그래서 진지하게 애인하고 대화를 나누고, 따봉이를 정식으로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내가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입양 계약서는 취업하면 바로 쓰기로 약속했다.


사실 애인은 굳건한 강아지파라서 따봉이를 평생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차근히 같이 대화를 나누고, 내가 따봉이를 생각치도 못하게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자 애인도 따봉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애인은 따봉이의 새 출발을 기념하는 의미로 팔자 따봉이 적힌 인식표도 만들어주었다. 따봉이가 3년 전에 태어났으니 띠가 흰색이고, 나는 쥐띠라서 빨간색이니 둘이 섞은 핑크색으로 골랐다나 뭐라나. 아무튼 따봉이랑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인식표라 매 순간 귀여워하고 있다.


따봉이는 나말고도 애인의 손도 잘 타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따봉이가 애인 품에 안겨서 곤히 자고 있더라. 애인은 그런 따봉이한테 못생겼다고 말하면서도 세상 다정한 손길로 따봉이를 쓰다듬어주며 지내고 있다. 아무리봐도 애인은 따봉이한테 폭 감긴 것 같은데 애인은 전혀 아니라고 한다.




확실히 따봉이가 나에게 마음을 연 것이 확실한 것이, 내가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마다 같이 책상 위로 올라와 망부석처럼 앉아있다. 애인은 책상에 자동급식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따봉이는 항상 내 앞에 앉아있으며 눈키스를 날리거나, 책상 위가 아니라면 책상 밑에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너무 억지일 수도 있지만, 분명 따봉이는 내 곁에 있고 싶어서 앉아있는 것이다.


하염없이 사료통 앞에서 망부석처럼 앉아있는 따봉이가 안쓰러워서 남는 뜨개실로 쿠션을 떠줬다. 때마침 수면사가 왕창 남은 상황이라서, 코바늘로 바닥 부분을 뜨고 대바늘 메리야쓰 뜨기로 옆면을 만들었다. 따봉이는 희한하게 박스를 싫어하는 편이라 일부러 옆부분은 낮게 떴다. 실은 열심히 쿠션을 만들다가 비슷한 방석을 1만원 대에 파는 걸 보고 현타와서 중간에 한번 때려쳤는데, 정작 산 방석은 너무 커서 책상 위에 둘 수 없길래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코바늘 뜨개질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서 대체 언제 다 뜨나 싶었는데, 뜨고나니 제법 그럴싸하길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다고 두번 만들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방석에 마음에 든 따봉�






작가의 이전글 D+155 세상에 못생긴 고양이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