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내 죽음을 미리 들여다봅니다.(7)
웰다잉 워크숍에서 만나는, '만약에 나'의 솔직한 얼굴
선생님, 저는 뭐 딱히 정리할 게 없어요.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유언으로 남길 만한 거창한 이야기도 없네요.
웰다잉(Well-Dying) 워크숍을 시작할 때, 참가자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거나, 혹은 웰다잉을 '거액의 상속'이나 '화려한 장례식' 같은 거대한 이벤트로 오해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일 앞에서 쉽게 흥미를 잃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하지만 잠시 대화의 초점을 옮겨, 사전에 작성한 삶의 이력들을 들여다 보고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혹시 아끼는 차가 있는데, 그 차를 누가 탔으면 좋겠나요?"
"오래 기르신 반려 거북이 두 마리는 누가 마지막까지 책임져 줄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모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누가 물려받았으면 좋겠어요?"
'나의 죽음'이라는 무겁고 추상적인 주제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내가 타던 차', '나의 거북이', '나의 잡지'라는 구체적이고 애정이 담긴 대상들이 대화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아, 맞다. 내 거북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동네 도서관에 기증해서 누군가의 꿈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라며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사소한 취미, 숨겨둔 덕질의 흔적, 무언의 애정을 쏟았던 반려동물들에 대한 걱정은 '만약에 나'라는 상상의 나라를 펼치게 하는 작은 트리거가 됩니다. '만약 내가 갑자기 없어진다면'이라는 가정 앞에서, 참가자들은 비로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작은 부탁들 속에는 거대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조카에게 차를 물려주고 싶다'는 소망은 단순한 물건의 배분을 넘어, 그 조카와의 따뜻한 관계와 애정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거북이를 동생이 책임져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가족 간의 신뢰를 확인 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솔직한 감정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 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멈칫에 머물지 않습니다. 작은 부탁에서 시작해, 배우자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감정의 고백, 오랜 친구와의 화해, 그리고 미루어 두었던 재산의 구체적인 배분까지, 지금까지의 인간관계, 자산, 습관, 취미까지 삶의 전반을 돌아보는 깊은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웰다잉은 '죽음을 준비하는 작업'이라기보다, '내 삶을 끝까지 사랑하고 존중하는 작업'인 셈입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삶의 작은 부분들까지 사랑하고 배려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의 마지막 여정은 존엄과 의미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내 작은 소유물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결국 우리가 살았던 삶의 크기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