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내 죽음을 미리 들여다봅니다.(6)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삶의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과거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 즉 땅에 묻히는 '매장(埋葬)'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묘를 써야 한다'는 관념은 이제 빠른 속도로 옅어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변화는 2007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대대적으로 개정되고 이듬해인 2008년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자연장(自然葬)'이 법적으로 제도화된 시점이었습니다. 이후 25년 부터 유골을 자연에 뿌리는 '산분장'까지 합법화 되면서 화장한 유골을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樹木葬)', 잔디밭이나 화초 아래에 뿌리는 '잔디장', '화초장' 등이 공식적인 장례 방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우리의 선택지는 더욱 놀랍게 확장되었습니다. 바다에 뿌리는 '바다장(해양장)'이 특정 해역 가이드라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유골을 고온으로 압축해 영롱한 '보석'으로 만들거나(보석장), 심지어 유해를 친환경적인 '퇴비'로 만들어 자연으로 완벽히 돌려보내는 방식(퇴비장)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선택지는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주장(Space Burial)'은 고인의 유골 일부(보통 1~7g)나 머리카락, DNA 샘플 같은 생전의 흔적을 작은 캡슐에 담아 우주로 보내는, 말 그대로 우주적인 장례 방식입니다.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내며 "하늘의 별이 되었다"라고 말하던 가슴 아픈 은유가, 이제는 기술의 힘을 빌려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셀레스티스(Celestis)' 같은 회사는 1990년대부터 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왔습니다. 그들은 <스타트렉>의 창시자 진 로덴베리나 심리학자 티머시 리어리 같은 유명인들의 유해를 우주로 보냈습니다. 캡슐은 지구 궤도를 돌다가 수년 후 대기권에 재진입하며 한 줄기 '유성'처럼 불타오르며 사라지거나, 달을 향해 가거나, 혹은 태양계 너머의 '심우주'로 영원한 항해를 떠납니다.
과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국가 주도의 기술 한계로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이 방식이, '스페이스X(SpaceX)' 같은 민간 기업들이 상업적인 우주 로켓 발사를 주도하면서 현실의 문턱을 빠르게 낮추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고가의 서비스지만, 기술 발전과 수요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가격 하락을 가져올 것입니다. 돈과 준비할 시간만 있다면, 우주에서의 영면이 보편화되는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왜 죽어서까지 우주에 가고 싶어 할까요?"
표면적으로는 '친환경'을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 평의 땅도 필요로 하지 않으니, 묘지 부족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로켓 하나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 데 막대한 자원이 소모되고, '우주 폐기물'이라는 심각한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아마도 그 본질은 '친환경'이 아니라 '특별함'과 '낭만'에 있을 것입니다. "아무나 가지 못하는 그곳을 나의 마지막 안식처로 삼는다." 이는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선택일지 모릅니다. 평생 밤하늘의 별을 연구했던 천문학자에게, 혹은 SF 소설을 사랑했던 소년의 마지막 꿈의 실현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마무리가 있을까요?
우주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은, 결국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죽음을 '소멸'이 아닌 '또 다른 여정'으로 본다면, 우주장은 그 여정의 가장 장엄한 시작일 수 있습니다.
물론 우주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어쩌면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목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 "어떻게 부모님을 나무 밑에 그냥 묻느냐"고 했던 시선이 불과 10여 년 만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바뀌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이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우주로 돌아가는' 것까지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어떤 '의미'로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그 선택이 숲속의 나무이든, 깊은 바다이든, 혹은 저 먼 우주의 별빛 사이이든, 그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존엄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