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라는 파도 위에서 중심 잡기

어느 대학원생의 PR 수업 노트 (2)

by 팔구사이


1. 시그널(Signal)과 노이즈(Noise) 사이의 줄타기


오늘의 수업은 교수님은 질문을 던지셨다.


"지금 유행하는 저 현상이 우리 브랜드에 기회일까, 아니면 독이 든 성배일까?"


우리는 매일 '버터런', '포엣코어', '다크샤워' 같은 새로운 단어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하지만 PR 담당자에게 이 모든 것은 똑같은 무게의 정보가 아니다. 어떤 것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노이즈'이고, 어떤 것은 우리 비즈니스의 근간을 흔들 '시그널'이다.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속도전'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그널이 단기 유행(FAD)인지, 아니면 15년 이상 지속될 '메가 트렌드'인지를 구분하는 안목이다. AI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 것처럼, 메가 트렌드는 생존의 문제이자 사회적 합의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2. 남양유업이 남긴 뼈아픈 교훈: 진정성이라는 필터


수업 중 다룬 '남양유업 불가리스 논란'은 트렌드 활용의 나쁜 예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웰니스 트렌드 속에서 면역력에 대한 갈구는 분명한 시그널이었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이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연결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판매량은 일시적으로 급증했을지 몰라도, 브랜드가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여기서 PR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배웠다. 바로 '보수적 판단'과 '과학적 근거'다. 트렌드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맞지 않거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PR 담당자는 단순히 유행을 확산시키는 확성기가 아니라, 리스크를 보완하고 평판을 관리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3. 챌린지의 진화: 구경꾼에서 퍼즐의 주인공으로


과거의 챌린지가 연예인들의 재미있는 춤을 따라 하는 수준이었다면, 2025년을 향해가는 지금의 챌린지는 '커머스'와 '문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릴스나 쇼츠 같은 숏폼 콘텐츠에서 소비자는 더 이상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그들은 브랜드가 제공한 판 위에서 자신만의 창의성을 더해 콘텐츠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모든 브랜드가 챌린지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업종의 특성이나 규제 환경에 따라 적절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PR 전략은 대중이 자발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판'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데서 시작된다. 소비자가 그 판에서 즐겁게 놀면서도 브랜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련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다.



4. 전략적 통역자로서의 PR: 시그널 필터링의 4원칙


수업의 마지막, 나는 내 노트에 '전략적 통역자'라는 단어를 크게 적었다. PR인은 대중의 시그널을 캐치하여 내부 의사결정권자들에게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번역해 전달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4가지 필터링 기준은 명확하다.


출처와 원인 파악: 이 유행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결핍에서 비롯되었는가?

영향력 평가: 긍정적인가 혹은 부정적인가? 재무적 임팩트만큼이나 평판 임팩트(Reputation Impact)를 고려했는가?

일치 여부: 우리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부합하는가? (마켓컬리의 상생 이미지와 상반된 블랙리스트 논란처럼 모순되지는 않는가?)

실행 가능성: 명확한 성공 지표를 설정하고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가?



5. 강의실을 나서며: 평판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책임


마켓컬리의 사례처럼 법적 문제가 없더라도 윤리적·사회적 비판이 브랜드 가치를 갉아먹는 시대다. 이제 PR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 ESG 경영의 핵심이자 리스크 관리의 중심에 서 있다.

강의실 문을 나서며 생각한다. 세상의 수많은 시그널 속에서 진짜 의미 있는 하나를 골라내고, 그것을 우리 브랜드의 진정성과 연결하는 일. 그 '전략적 통역'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도 가치 있는 일인지를 말이다. 이 수업을 경험하면서 내가 직접 찾은 시그널을 수업 중 탐구 도구인 매트릭스에 올려 분석해 볼 예정이다. 나의 안목이 누군가의 생존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기분 좋은 떨림으로 성장을 경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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