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젊은 웰다잉 가이드: 농담하는 죽음

매일, 내 죽음을 미리 들여다봅니다. ③

by 팔구사이

웃으며 농담하는 죽음, '실버 센류'


웰다잉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재밌고 특색 있는 활동을 알아보다 현재까지도 일본에서는 '실버 센류(川柳)'라는 것이 큰 유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센류는 5+7+5로 구성된, 총 17자의 짧은 정형시로, 하이쿠(俳句)와 달리 사회나 인간의 모습을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담아내는 장르입니다. '실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노년 세대가 직접 겪는 노화, 일상,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들을 ‘실버 센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이쿠(俳句): 센류와 음수 구성은 같으나 계절어를 섞어 자연과 인간의 심오함을 절제된 표현으로 담은 센류와 비슷하면서도 성격이 다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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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지만 / 잠꼬대인지 아닌지 / 아내가 묻네"


"비밀번호를 / 나만 알았는데 / 나도 잊었네"


"사랑이란 말 / 이제는 부정맥 / 일으킬 뿐이야"


이런 시들을 읽으면 처음에는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그 뒤에는 노년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과 서글픔, 그리고 놀라운 '수용'의 태도가 엿보입니다.

저는 이 '실버 센류'의 유행이,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일찍 고령화에 돌입한 일본 사회가 죽음을 준비하는 '생애 마감 준비' 문화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머지않아 우리가 맞이할 웰다잉 문화의 중요한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조심히 예상해봅니다.


죽음, 노화, 질병. 이 단어들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왔습니다. 특히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죽는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노년 세대는 이 무거운 주제를 '유머'라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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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억력 감퇴를 한탄하는 대신 "뇌 속의 지우개 / 성능이 너무 좋아 / 방금 일도 잊네"라고 웃어넘기고, 부부 관계의 변화를 "손주 녀석에 / 내 서열 밀려나고 / 이제는 펫(pet) 서열"이라고 풍자합니다.

이 유머의 기저에는 '인정'이 깔려 있습니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웰다잉의 첫걸음은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인정''삶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실버 센류는 이 무거운 첫걸음을 가장 유쾌하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가능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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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음과 노화를 유머로 '일상화'하는 문화가 무르익자, 그다음 단계인 '실질적인 준비'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인생 정리 활동(終活, 슈카츠)' 트렌드입니다.

'슈카츠'라고도 불리는 이 활동은, 단순히 장례를 준비하는 것을 넘어, 남은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문화를 뜻합니다.


엔딩노트를 작성해 자신의 연명의료 의사나 장례 방식을 정하고, 남겨진 이들이 힘들지 않도록 미리 유품을 정리하며, 심지어 자신의 장례식을 스스로 기획하고 비용을 지불해두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실버 센류가 '정서적 준비'라면, 이러한 '인생 정리 활동'은 '실용적 준비'입니다. 일본 사회는 이미 오래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1인 가구 증가, 핵가족화, 그리고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맞물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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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와 죽음을 유머로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진 사회적 분위기가,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인생 정리' 문화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웰다잉은 더 이상 슬프고 무거운 일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프로젝트로서 '기획'하고 '관리'하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겪었던 사회 변화(1인 가구 급증, 자녀 세대와의 분리, 노(인)-노(인) 케어 등)를 우리는 훨씬 더 압축적으로 겪어내는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240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는 '실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상조회사에 대한 인식도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합리적인 준비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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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정서적 준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께 '엔딩노트'나 '장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고, 부모 세대 역시 "재수 없게 그런 소리를 왜 하냐"며 손사래를 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실용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고, '문화적'인 영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버 센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너무 무겁고, 너무 엄숙하고, 너무 슬프게만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형 '실버 센류'가 필요합니다. 노년의 삶과 죽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웃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TV 프로그램이든, 시니어 백일장이든, 혹은 저와 같은 작가들의 에세이든 상관없습니다. 죽음을 삶의 반대편에 있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정서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일본의 '실버 센류'가 유쾌한 웃음으로 죽음 준비의 문턱을 낮추었듯이, 우리도 죽음을 공론화하고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한 장을 쓰는 실용적 준비를 넘어, 가족 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내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진정한 '웰다잉'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가장 존엄한 죽음 준비는, 죽음을 앞두고 찡그리기보다 오늘을 웃으며 살아내는 그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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