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왜곡된 솔직함을 말한다

by 팔이칠

살이 좀 빠진 것 같다는 말보다

요즘 얼굴이 많이 상했다는 말이

괜스레 더 날카롭게 내 마음을 찢는다

걱정해 주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건의 서술은 필연적으로

감정의 묘사를 동반한다

그렇기에 진실은 대체로 먼저

불쾌함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솔직함이란 핑계로

내게 건네졌던 말들이 있다


“너 가끔 너무 선을 긋는 것 같아”


내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는 사실에

역시나 그의 감상이 찐득하게 붙었다


나도 나를 알기에 그 말이 억울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잘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조금 각색되어

내 귀를 타고 들어오는 일은

예상보다 더 당황스럽고 불편한 것이었다


내 얘기를 하지 않는 것과

너에게 선을 긋는 것은 다르다는

지극히 이성적인 반박은

언제나 그렇듯

나의 명치를 넘지 못하고 가라앉아

내 안에 다시 삭아 들뿐이었다


누군가 나를 한동안 지켜본 뒤

건네오는 감상에 대해

일일이 대꾸하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사회초년생 티를

막 벗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특별히 면밀하지도 않았고

내가 그 평가를 곱씹어 보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을 즈음이면

정작 그들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작은 한 마디를 양분 삼아

무언가 꿈틀거리는 싹을 틔워내기엔

나는 더 이상 어리지도

그렇게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그리는 말들이 조금 어긋나 있어도

굳이 나서서 고쳐 잡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선을 긋는 사람’도

‘차가운 사람’도

‘생각이 많은 사람’도


약간의 사실은 섞여 있다는 걸 알기에

내 안의 자아라는 뼈대 위에

타인의 시선이라는 살이 붙어 가며

‘사회인으로서의 나’가

모양을 잡아간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말들이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듣자마자 잊어버린 말들도 있지만

어떤 말들은

몇 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를 만큼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특히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빴던 말일수록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대조해 보게 된다


사실과 감정이 교묘하게 엉겨 있는 문장일수록

뼈와 살을 분리해 내기가 어렵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 온 사람이었다


얼마 전 동생이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의 일이다


언제 그렇게 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작은 규모의 직장이었기에

놀라울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눈치였지만


막상 잘리고 나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던 날


나는 한참을 듣기만 하다가

괜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넌 성격이 너무 느긋한 게 문제야“


미리 이직을 알아보라고 이미 조언을 했지만

꼭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움직이는 동생에게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고작 이런 식으로 건넸다


회사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듣고

나의 감상을 담아

느긋하고 게으른 사람을 그려냈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문장은

다시 집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건

말을 내보내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였다


괜히 말을 보탰다는 후회와

그래도 언젠가는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을 거라는

얄팍한 변명이

입안에서 뒤섞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동생에게 했던 말을 다시금 되뇌었다

솔직히 말해 그 문장은

동생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계속 미루고 있는 결정들

언젠가 해야 한다며 끝없이 미뤄 두는 일들을

알면서도 손대지 못하는 나


그런 나 자신을 향해 발사된 탄환이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야

다른 이들이 내게 건넸던 말들을

조금 다르게 떠올려 보게 되었다


“너 요즘 얼굴이 많이 상했다”

“너는 원래 선을 긋는 편이잖아”


몇 개의 사실 위에

말하는 사람의 감상이 덧칠되면

그건 더 이상

나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그가 바라본 나에 대한

짧은 평론에 가까워진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보이는 타인의 모습을

정리해 두기 위해

이런 말을 남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입안까지 올라온 말에

조금 더 천천히 숨을 섞어 보려 한다

상대의 모습을 단정 짓는 말 대신

“내가 보기엔 그때의 너는”으로

조금 돌아 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한다


어차피 내가 건네는 말도

언제나 어느 정도는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 담긴

왜곡된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묘사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너무 오래, 너무 날카롭게

남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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