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품 안에 농담 한 줄은

by 팔이칠

삶을 대하는 나의 방식

쓸데없이 심각해지지 않기

그러나 필요한 순간엔 누구보다 진지하게


나는 대부분의 순간에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다

여유 있고, 유머러스하고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웃음을 건네는 그런 사람


하지만 정작 하루를 들여다보면

웃을 만한 일들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업무들

모니터 사이로 흘깃 보이는

상사의 표정이 나의 퇴근 알람이다


겉으론 정중하지만

숨기지 못한 짜증이 흘러나오는

차 좀 빼달라는 전화 한 통


월세와 카드값과 보험료가

차례대로 통장을 들렀다 가고 나면

찍혀 있던 쉼표가 줄어든 만큼

덜 쉬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부담스러운 다짐만이 남는다


심각한 일들을 심각하게만 받아들이기엔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급하게 환기창을 여는 심정으로

웃을 거리를 찾는다


진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입 안에서

우스갯소리가 빙글 맴돈다

살짝 무례해 보일 수도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일단 다 같이 웃고 나면

온 마음 다해 붙잡고 있던 문제가

정말 밤새 고민해야 할 일이었는지

사실은 한숨 잠깐 돌리고 나서

가볍게 털어 버릴 일이었는지

조금 알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문제는

웃음 한 번에 무게가 줄어든다

그 틈에 숨을 돌린다

그게 내가 유머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떤 순간 앞에서는

도저히 농담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중한 친구의 아버지께서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던 날

가지런히 떠오르는 잿빛 연기 사이로

낯선 침묵이 오래 머물렀다


감히 괜찮다고 말해 줄 수도

괜히 웃으라고 실없는 소리를 할 수도

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모든 순간에

유머가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때로는 웃음기를 완전히 지운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옆을 지켜 주는 일이

누군가를 향해 건넬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일 때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모른 척 덮어 둔 채

언제나 그랬듯

서로를 웃기겠다고 애써 던지는

농담들이 오가는 자리였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내뱉는

무수한 말장난과 애드립들이

테이블 위로 쌓여 갔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슬픔 앞에서

그날처럼 다시 주저앉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서로를 웃기고

또 같이 웃었다


생각해 보면

내 품 안에 꼭 쥐고 있는 농담 한 줄은

모든 일을 가볍게 여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무너질 틈을 조금이라도 늦춰 보려는

나름의 몸부림에 가까웠다


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어제 모처럼 과음을 한 탓에

반나절을 숙취에 시달렸고

밀린 업무를 처리했고

집에 돌아왔다


소란했던 하루의 감정들이

조금씩 가라앉는 밤

불이 꺼지고

핸드폰 화면만이 희미한 방


조용히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회의 중 누군가 던졌던

쓸데없는 농담 하나가 떠올랐다

그땐 그냥 그랬는데

뒤늦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결 괜찮은 기분으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만큼 버거울지

아니면 조금은 더 가벼울지는

내일이 되어 봐야 알겠지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언제나 사표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데

나는 사표 대신

농담 한 줄만 담아 두려고 한다


세상이 별로 웃기지 않은 날에도

한 번쯤 피식 웃어 버리고

그래도 내일을 버텨 보려고

매거진의 이전글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