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지쳤어요

중증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집은 긴 연휴가 반갑지 않다

by 곽예지나

연휴 일주일째. 드디어 병이 나고야 말았다. 연휴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고, 밥은 잘 먹지 않고, 날마다 짜증과 울음 범벅에, 어딜 가든 징징거리기만 하는 유림이와 1초도 떨어지지 않고 꼬박 붙어있었더니 기어이. 드디어. 마침내! 소화 불량, 체기, 어지럼증, 무기력, 가슴 답답함, 불안, 초조, 좌절감, 기타 등등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짓눌렀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면 공황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술을 마셔야겠다, 잠깐 생각했다가, 이런 상황에서 복용할 수 있는 게 알코올과 약 중에서 뭐가 더 나을까 고민해 봤다. 어쨌든 전자는 어느 때나 구할 수 있는 식품이고, 후자는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야 하는 의약품이니까.


학교도 가지 않고, 센터도 가지 않고, 활보 선생님도 오시지 않고, 명절이라고 해서 양가 부모님들에게 잠깐 맡길 수도 없었다. 어딜 가든 유림이는 남편과 나만이 감당할 수 있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같이 지워주긴 했을 것 같지만. 동정은 따사롭긴 한데 현실적인 도움은 못 된다. 사실 가족들앞에서 의연한 척, 괜찮은 척 하는 데도 지치긴 했다. 마음은 사실 하나도 안 괜찮은데 나하고 남편이 패닉 상태에 있으면 가족들이 이런 우리를 보면서 같이 괴로울테니까. 주변 사람들까지 같이 괴롭게 하고 싶지는 않다. 같이 괴로워봤자 역시 도움은 안 된다.


그런 와중에도 유림이에게 운동을 시키기 위해서 꼬박꼬박 어딘가에 나갔었는데, 어딜 가든 유림이를 지나쳤다가도 기어이 고개를 돌려 ‘이건 뭐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지쳐버렸다. 그만 좀 쳐다봤으면. 연예인이 예쁘거나 잘생겨서 쳐다봐도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압박감이 들 텐데, 이상하고 특이해서 쳐다보는 그 시선을 도저히 마음 편히 넘길 수가 없다.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작은 바이러스가 와도 결국 항복의 깃발을 들게 되듯이, 지금 내 심리 상태가 그렇다. 사람들의 티끌 같은 시선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도 새 아침에는 사기 충천하여 오늘은 반드시 전날과 다른 날을 보내겠노라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겠노라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청소도 하고, 옷장 정리도 하겠다고 다짐하며 시작한다. 그러나 하루 종일 유림이에게 시달려 너덜너덜해지고 난 뒤 느지막한 오후가 되면 의지력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나를 불쌍히 여기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침대에 누워 손가락이나 까딱하고 있으면, 그거라도 하면서 기분이라도 좋아져야 염치가 있을 텐데. 또 이런 쓸모없는 하루를 보내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앞이 더욱 캄캄해진다. 그럼 일어나서 뭐라도 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해보지만 또 다른 나의 저항은 여전히 거세다. 못해. 못 한다고. 백 번 욕해봐도 나는 못 해.


마음 챙김도, 명상도 다 좋지만, 솔직히 그런 것은 작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마음이 꽁꽁 묶여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나처럼 누가 봐도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던져져 조금도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이 그나마 다르게 고쳐먹을 수 있는 건 내 마음 가짐밖에 없겠지만, 그 마음 가짐을 도대체 어떻게 갖는다는 말이지? 앞에서 한 말을 거듭 반복하자면, 누가 봐도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100명을 데리고 오면 101명이 괴로울 이런 상황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더 이상 다스릴 수가 있단 말이야.


이대로는 답답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허겁지겁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는 사이, 아침 산책을 시키겠다고 남편이 유림이를 데리고 나갔는데, 집의 창문 너머로 유림이가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제발 그만 징징대. 너 스스로를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너도 답답해 미치겠지만 널 돌봐야 하는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정답은 술, 아니면 약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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