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니까

2025년 6월 7일 토요일

by 곽예지나

am 7:47


루틴의 가장 큰 단점은, 그 루틴의 환경이 안 되면 그 활동 자체를 안 하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5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주 고요한 시간에 혼자 거실에서 일기를 써야 하는데, 늦잠을 자서 거실이 이미 식구들의 점거 상태가 되면 일기를 쓰기 싫어진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로 늦잠을 잤고, ‘으악 일기 쓰기 귀찮아.’라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아니야, 무슨 소리야.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이런 단단한 결심을 해서 노트북을 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지근한 물 한잔을 들고 소파에 파묻혀서 책이나 읽을까 했던 그 순간 거실에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일기를 쓰는 환경이 다 갖춰져 버렸네? 그래서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켰다. 그럼 이건 루틴의 장점인가?


우리 아들은 요 며칠 사이 감정 기복을 종 잡을 수가 없다. 분명 아까까지는 웃고 있었는데, 방에 들어가 있는 지금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도 울다가 웃다가 짜증 내다가 즐거워하다가 몇 번의 사이클을 돌았는지.

어제는 진짜 오래간만에 유림이한테 물렸다. 유림이가 한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털실 뭉치만 계속 갖고 노는데,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서 억지로 뺐었더니만. 순간 반지를 뺏긴 골룸을 보는 줄 알았다. 불 같이 화를 내며 내 배 위쪽을 깨무는데 진짜 너무 아파서 “야!!!” 하는 샤우팅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유림이한테 마지막으로 물린 게 2년 전인 것 같은데, 그동안 꼬집기 정도의 도전 행동은 종종 나왔지만 물기는 참 오랜만이다. 학교나 치료실에서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집의 최고 권위자인 내 앞에서 거기까지는 자제가 되었었는데.


유림이의 도전 행동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사실 좀 자제하고 싶은 부분이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이 싫어서이다. 유림이와 같은 자폐성 발달장애인을 만났을 때 ‘나한테 해코지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으로 그 자리를 피하거나,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 수도 있다.


사실 유림이랑 같이 이동할 때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스스스 비켜나는 것 정도야 뭐 이제는 큰 상처도 아니다. 유림이가 특정한 행동을 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면 그때마다 린아가 “어휴, 창피해. 엄마, 오빠 너무 창피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자폐성 발달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우리가 사회 밖으로 던져지는 것은 싫다. 사람들이 유림이를 잠재적인 공격 가능자로 생각하는 것도.


나 또한 유림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절대 몰랐겠지. 나도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아니면 그 이상으로 더 불안감을 표현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의 포용 범위가 좀 더 넓어지면 좋겠다. 왜냐하면 일단은 내가 이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유림이까지 받아주는 게 무리라면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 유림이를 돌보는 나라도 이 사회에 틀에 넣어줘야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결국 내가 살아야 유림이도 지킬 수 있으니까.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 사회에 굳건히 자리 잡기를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난 그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장애인이 있으면, 그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100% 해석할 수 있어서 그만큼 더 상처받는 나 같은 사람.


am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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