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케네디 <템테이션>을 읽고
영화보다 책에 훨씬 관대한 편이다. 무슨 말이냐면, 더글라스 케네디가 쓰는 것과 비슷한 장르를 다루는 영화는 애초에 보지 않는다. 이 책을 본 이유는 단순히 이것이 ‘책’이기 때문이었다.
대신 영화보다 책에 훨씬 박하기도 하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면, 같은 내용을 영화로 봤다면 ‘응, 그렇구나.’하고 두루뭉술하게 넘길 일을, 책에서 접할 때는 좀 더 날을 세우고 읽는다. 등장인물이 이렇게 행동하는 게 납득이 안 돼. 여기서 갑자기 왜 이런 전개가? 마무리가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고 호되게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내가 선호하는 작가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남성적이어서? 남성 작가니까 당연히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쓰게 되는 거긴 하지만 분명히 좀 더 불편한 포인트가 있다. 남자 주인공에 비해서 평면적이거나 단순 소재 거리로 소비되는 여성 캐릭터들, 여성의 심리에 대한 설명의 부재 때문에 그렇게 느끼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도 집에 몇 년째 방치되어 있다가(남편이 산 것 같음) 이번에 방학을 맞이하여 책 정리를 하는데, 그냥 버리기는 좀 아까우니까 한번 읽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펼치게 되었다.
일단 몰입감은 대단했다. 아침에 책을 펼쳤는데 그날 저녁에 끝을 봤으니, 뒷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게 책을 써 내려간다는 점에서는 일단 인정. 마무리도 뭔가 굳이 교훈이나 깨달음을 줄락 말락 하는 부분이 살짝 진부하긴 했어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해피엔딩 애호가이자 비극 기피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파멸로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은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긴 했다. 시간 들여서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 계속 마음이 찜찜한 건 싫다. 어쨌든 책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생을 한 당사자이니, 마지막이라도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은 책이었다.라고 말하고 끝낼 수 없는 이유는 앞서서 이미 말했던 것과 같다. 충분히 재밌긴 했지만 이것보다 더 나은 전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립 플렉의 섬으로 초대받았을 때 일어났던 사건들과 주변인들의 상황, 그가 모든 사건의 원흉인 것을 깨닫고 마사의 힘을 빌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좀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필립 플렉은 중간 빌런에 불과하고, 진짜 흑막은 그의 부인인 마사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었더랬다. 한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 뒤 녹다운 상태가 되었을 때 식은 죽 먹기처럼 손에 넣는, 가스라이팅에 최적화된 그런 빌런! 근데 이렇게 쓰고 보니 오히려 이런 내용이 더 전형적일 수도 있겠다. 역시 이야기 창작 쉽지 않긴 해.
실패한 자신에게 등 돌린 모든 사람들을 다 관대하게 용서하고도, 전 부인을 버리면서까지 만난 두 번째 사랑 샐리에게는 모질게 대한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이제 알겠다. 주인공은 사람들을 용서한 게 아니다. 애초에 그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는 그것뿐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쩌면 사랑이었나 보다.
성공에 대한 유혹 때문에 위기에 빠지지만, 사랑의 유혹 앞에서는 정직했고, 결국 그 사랑이 주인공을 구해주게 되었다. 같은 유혹이지만 다른 결론이 나오는 이 모순은 뭘까? 먼 길을 돌아가야 했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손에 남은 진리는 허무함 뿐이었더라도, 결국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