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친밀감을 느끼다가, 거리 두기 하기를 반복했다. ‘운명적 문과’라는 표현이나 ‘내가 오로지 수학 재능이 없어서 문과가 된 건 아니다. 물질의 변화에 대한 호기심도 없었다.’라는 고백 앞에서 “저요! 저도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하면서 열렬히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다양한 과학 서적을 통해 습득한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개념을 다시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역시 서울대....’ 하며 잠시 책을 멀리 치워두었다. 작가님은 ‘이 정도 설명이면 성골 문과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셨는가 본데, 아니, 전혀 아닙니다.... 이로서 문과 사이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책을 다 읽고 나서 태깅해 두었던 문장들을 필사하는데, 하나같이 너무나 인문학적인 내용에만 줄을 그어 놓은 나를 발견하고 실소가 나왔다. 정리된 부분만 읽으면 과학 책을 읽었다는 것을 전혀 모를 정도였다. 작가님이 정성 들여 설명한 과학적 개념은 반쯤 졸면서 읽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대신 과학적 사실에서 도출해 낸 작가의 해석이나 접근은 눈을 반짝이며 읽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운명적 문과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무래도 유시민 작가님은 조금 더 겸손하셔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막 깔려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의 서두에 작가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그전에는 과학 속의 세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과학과 나는 가는 길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과학을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를 둘러싼 세계를 진지하고 명료하게 살펴보지도 않으면서, 관념들의 조합으로만 이 세상을 이해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반쪽 짜리 삶-이라고 말하면 인문학을 너무 홀대한 것 같으니, 2/3짜리 삶 정도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이 책은 과학과 관련된 나의 관점을 105도쯤 꺾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나의 인생을 바꿀 갈림길에 서게 해 준 역할을 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전에는? 오로지 문과 외길뿐이었지.
다짐하건대 앞으로 내가 써서 올릴 수많은 독서 후기 중에서, 과학 관련 서적이 못해도 10권 중에 1권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소설 9권을 읽을 때 과학책 1권을 읽겠다는 말이 아니다. 소설 9권을 읽는 동안의 시간이 걸려야 과학책 1권을 겨우 독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지금의 결정을 머리 쥐어뜯으며 후회하고 있는, <코스모스>를 읽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디 그것이 행복한 고통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