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기가 올라갈 쯤에는 안 아팠으면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by 곽예지나

am 6:52


유림이가 열이 난다. 어제 오후부터. 금요일이니까 저녁에 족발 시켜 먹어야지 하는 한가로운 계획을 세우며 퇴근하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유림이가 열이 나서 센터에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길이라고. 갑자기 머릿속에 사이렌이 울리며 비상! 비상! 경보가 떴다.

그래, 아플 때쯤 되긴 했지. 유림이가 마지막으로 아팠던 것이 작년 8월이었다. 6개월이면 면역력이 한번 업데이트될 타이밍이다. 그 사이 린아가 저번 독감을 포함해 4번 정도 아팠던 것을 고려하면, 2살 위의 신체적 오빠로서(정신 연령은 별개이기 때문에) 훌륭한 모범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림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 아프면 좋을 텐데.


어제 처음으로 먹은 해열제는 약효가 잘 들어서 저녁밥도 먹이고 비교적 마음을 놓았었다. 하지만 그 뒤에 다시 열이 올라 먹인 해열제부터는 체온이 미동 없이 39도 언저리. 나도 밤새 옆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보초를 섰다. 열이 높으니 푹 자지 못하고 다섯 시가 넘자마자 벌떡 일어난 유림이에게 아까 6시쯤 다시 해열제를 먹였다. 이제 좀 열이 잡혀야 할 텐데.


그나마 좀 컸다고 어제 숟가락에 담긴 쓴 해열제를 덥석 받아먹더라?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남편은 자기가 아침마다 숟가락으로 유산균을 먹여온 경험 덕분에 그런 거라고 의기양양해했다. 유산균은 2년 전부터 먹어왔던 거지만 그래, 그런 걸로 하자. 이것은 간병의 역사에서 엄청난 변혁이니까. 유림이가 약만 잘 받아먹어도 아플 때 우리의 걱정의 50%는 줄어든다. 그동안 유림이의 약 거부가 엄청난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원래 작년까지 유림이에게 약을 먹이는 방법은 이랬다. 1. 유림이를 바닥에 눕힌다. 2. 내가 유림이 가슴께에 앉아서 양 무릎으로 유림이 얼굴을 고정한다. 3. 남편이 유림이의 다리 쪽과 양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는다. 4. 내가 한 손으로 유림이의 코를 막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놓고, 나머지 손에 쥐어진 숟가락 속의 가루약을 얼른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5. 만약에 이 과정에서 유림이의 저항이 거세어 약이 쏟아지거나 충분한 양을 복용하지 못하면 다시 1번으로 돌아간다.

이런 식이니 남편과 나 외에 유림이에게 약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수 밖에. 그래서 아픈 유림이를 봐주시던 시부모님께서 약 먹일 시간에 맞춰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유림이를 데려오신 적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만약에 지금 키우는 반려동물이 말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가장 많은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은 “주인님, 사랑해요. 고마워요.” 등의 애정을 표현하는 말을 듣고 싶을 거라고 예상하겠지만, 정답은 “주인님 저 지금 어디 어디가 아파요.”라고 한다. 말도 못 하고, 아픈 곳도 표현하지 못하는 반려동물이 어딘가 불편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치료 시점이 한참 넘었을 때가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키우는 대상은 좀 다르지만(!) 나도 유림이를 볼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우리 아들. 열이 언제부터 났는지, 머리는 어지럽지 않은지, 배는 괜찮은지, 소화는 잘되는지, 혹시 이가 아픈 건 아닌지, 똥을 못 싸서 그러는 건지? 만약에 어떤 질병이 추측되어 치료를 받게 되면 그 치료 경과로 지금 상태가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치료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게? 치과 한번 들를 때마다 다섯 명 이상의 성인이 필요하고, 독감 및 코로나 검사는 포기한지 오래다. 중년이 된 발달장애인이 암에 걸렸는데 항암 치료받는 것을 거부해서 손 쓸 도리 없이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유림이를 대입하는 나의 상상력이 싫지만, 으, 여기서 더 이상 표현을 구체화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유림이는 본인 몸에 손톱만큼이라도 불편함이 생기면 온 집을 굴러다니며 짜증을 호소해서 아픈 것을 절대 모를 수는 없긴 해.

잠깐,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우리 엄마가 맨날 하시던 말이다. “언니는 어디가 아파도 조용히 혼자 앓고 있는데, 예지나 저것은 어렸을 때부터 좀만 아프면 아주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엄마를 들들 볶았어. 그래서 맨날 예지나 아프고 나서는 내가 아팠다니까.”

얼른 낫자 엄마 닮은 김유림, 안 그러면 그다음에 엄마가 아플 참이다.

am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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