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를 위한 변호는 다음 시간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by 곽예지나

비문학 독서는 쩔쩔매는 내가 거의 한 달에 걸쳐서 읽은 책이다. 문학은 중간에 길을 잃더라도 결국 하나의 줄기에서 만나게 되는 지점이 명확히 있다. 반면에 비문학은 분명 눈을 똑바로 뜨고 한 줄 한 줄 집중해서 읽고 있었는데도, 고개를 들어보면 갑자기 앞뒤 막혀있는 수풀 속에 내던져진 느낌이다. 교묘하게 길을 잃어버리는 듯한 그 느낌이 싫어서 비문학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문학의 배경지식으로는 채우지 못하는 상식과 지식의 공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명색이 가르치는 직업인데, 학생들 앞에 섰을 때 새로운 지식을 줄 수 없다면 교사로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에는 문학과 비문학을 섞어서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치, 경제, 역사, 문화, 과학, 종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서술했다. 그 서술의 방향이 묘하게 부정적인 것 같은 것이 포인트이다. 사피엔스의 등장과 번영 자체가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에게 크나큰 재앙이었다는 것. 그리고 사피엔스 종 자체에게도, 발전을 꾀하려는 시도들이 사실은 한 개체를 더 궁핍한 삶으로 몰아갔을 뿐이라는 것. (농업 혁명, 산업 혁명, 과학 혁명 모두).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과학 발전에 윤리적 장벽이 사라지는 순간, 그때가 바로 사피엔스 종의 멸망이 올 수도 있다는 것.

보수적인 분위기의 학교에서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도덕규범을 포함한 규칙과 질서 체계를 가르치는 나. 단순히 직업 때문만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애국심과 시민 의식을 갖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가상의 실재에서 허우적대는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만들어냈을 뿐인 불공평한 세상의 실체를 모르고 맹종하는.


그래서 읽는 내내 ‘아니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라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반발심이 일어나지만? 가방끈 길이로 보나, 논리적 사고의 수준으로 보나, 자료 수집 및 해석 능력으로 보나, 나는 어디 하나 유발 하라리를 이길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그냥 씩씩- 거리고 혼자 흥분하다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사실 반박하고 싶어서 고개를 휙 들었더라도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떤 수풀의 한 지점에서 길도 못 찾고 두리번거리는 처지인데. 일단 출구를 찾아야 대들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그러려면 이 책을 최소 10번은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까고 싶으면 일단 알아야 한다. 그러니 사피엔스 종을 위한 변호는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