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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담 Aug 06. 2024

#8. 그를 위한 도시락 <채소도시락>

내가 살기 위해 나는 너를 위해 산다

너는 그녀를 지켜.
나는 그런 너를 지킬 테니까.


고구마 상자에서 고구마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은 후 타이머를 맞춰준다.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 작은 찜기를 꺼낸다. 가벼운 재질에 빨간 손잡이가 귀여운 찜기다.

적정선까지 물을 담고, 작은 접시를 얹어준다. 잠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냉장고 속 채소를 꺼내온다.


작은 당근과 양배추.

때에 따라서는 아스파라거스도 추가한다.


단맛이 강해 먹기 좋은 작은 당근과 쌉쌀한 맛의 양배추를 껍질채 씻어주고,

아스파라거스는 찜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손으로 툭 하고 잘라준다.


찜기 위의 접시에 당근, 양배추를 올리고 가스불을 킨다. 물이 끓어오르면 아스파라거스를 마저 올려주고 3분 후 가스불을 꺼준다. 잔열이 식을 때까지 잠시 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유정란을 사 와 만들어 놓는 구운 달걀 두 알을 꺼낸다.


도시락을 꺼내,

구운 달걀 두 알, 군고구마 1개, 익힌 채소를 차곡차곡 담아준다.

아침이면, 그를 위한 도시락을 만든다.

1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다닌다.

1년을 크게 나눠,

반년은 정신없이 바쁜 성수기.

반년은 여유가 있는 비수기.

혼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끼니가 뭔가. 어떤 날은 물 한잔 제대로 마실 시간도 없었다던 그였다.

가끔씩 그런 그에게, 이동하는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하지만 영양가 있는 도시락을 챙겨주곤 했었다.


아픈 그녀를 돌보느냐 본인의 몸 상한 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그를 지켜야만 한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그를 지켜낼 것이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게 어때서?

내가 좋아죽겠는데.

내가 너 없음 안 되겠는데.


내가 살기 위해 나는 너를 위해 산다.


온기가 식지 않은 도시락을 손에 들고 문을 나선다.

그에게 가는 몇 번째 발걸음일까.


유일하게 열려 있는 문이었다.

한 발자국씩 천천히라도 앞으로 나가면 그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생각했는데,

그 문이 닫혀버렸다.

온통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차 그 어떤 빛도 보이지가 않는다.


잠시 눈을 감은 것뿐이라고 했다.

우선, 사람부터 살리자 했다.


길고 긴 시간이 될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원치 않은 동행이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래야 한다면.

같이 걸을 것이다.

오늘도 난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본다. 그 발걸음이 늪에 빠진 듯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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