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도 감, 동해

북평오일장

by 집사 김과장



동해 북평면에 오일장이 선다.

바닷가 장터답게 생선 비린내가 떠다녔다.

장터 골목은 직사광선을 가리기 위해 설치한 천막으로 덮였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천막에 갇혀 열 돔을 만들었다.

찻길과 인도를 점령한 장꾼들 얼굴은 폭염에 벌겋게 떴다.

지나는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칠 때마다 골이 울렸다.

열 돔에 갇힌 나와 아내는 짜증이 났다.

폭염을 피할 겸, 요기도 할 겸 시장통 국밥집에 들어갔다.

50년 전통의 노포임을 자랑하는 집이었다.

슴슴하지만 감칠맛이 도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니 정신이 들었다.


“사장님, 여기 3일장입니까?”


“3일, 8일, 5일장이에요. 닷새마다 장이 서지요.”


“그럼 저 천막은 계속 쳐 놓는 건가요?”


“웬걸요. 접었다가 장날만 펴지요.”


"매번 큰일이겠어요."


국밥집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다시 장터인지 전쟁터인지 모를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제야 장꾼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과일 좌판을 벌인 중년 여자는 스뎅 그릇에 대충 비빈 밥으로 요기를 하고 있었다.

복숭아 바구니에 '천도 복상'이라 써붙인 팻말이 우스워 걸음을 멈췄다.

아내는 피자두를 신기해했다.


"자두 달아요. 8개 만 원. 싸게 가져가요."


귀가 얇은 아내는 내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닐봉지에 과일을 담는 여자의 귀밑머리에 땀방울이 달렸다.


“더위에 장이 서면 힘드시겠어요.”


“우얍니꺼. 먹고 살라모 좌판 깔아야지요.”


강원도 사투리가 아닌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낯설었다.


“장날마다 오십니까?”


“하모요. 오늘은 여서 장사하고, 내일은 정선, 모레는 또 어데더라? 장 서는 곳마다 따라가지요.”


여자는 장돌림이었다.

트럭에 물건을 싣고 장을 따라다니는 장돌뱅이.

아직도 장돌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자두를 건네는 여자의 손은 억세고 투박했다.

뜨거운 날씨보다 더 뜨거운 생활력이 느껴졌다.





노파는 과일 트럭 옆에 신문지를 깔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천막도 없이 챙이 큰 모자 하나로 햇볕을 받아냈다.

연신 부채질을 해대는 손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신문지 위에는 마늘 두 접밖에 없었다.

초라한 차림과 달리 알이 실하고 상한 부분이 없어 탐이 났다.


“3만 5000원 주소.”


“좀 비싼 것 같은데… 계좌이체 됩니까?”


“되기는 되는데…”


노파는 귀찮은 기색으로 지갑을 열었다.

오천 원짜리 지폐 사이에서 메모지가 나왔다.

종이에는 농협 계좌번호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마늘값을 치르고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자 노파의 고개가 멀어졌다.


“하… 인자 눈이 어두워서… 아저씨가 좀 읽어주소.”


그때 노파의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보자, 은행 문잔가 보다.”


“맞네요, 읽어 드려요?”


“함 봐 주소.”


“김XX, 3만 5000원 보냈습니다.”


“됐네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입금을 확인한 노파는 한껏 상냥해진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걸 본 와이프가 툴툴거렸다.


“더 깎을 수 있었는데.”






“가오리야, 가오리야. 너는 왜 죽어서 거기에 널려있느냐?”


술에 취한 남자는 덕에 널려있는 커다란 가오리포를 툭툭 치며 흥얼거렸다.


“그놈이 죽어야 돈을 벌지.”


어물전 아낙은 남자의 주정을 매끄럽게 받았다.


“그렇지, 돈이 중요하지!”


남자는 배를 벅벅 긁으며 시시덕거렸다.


“돈이! 최~고~야!”


남자는 타령조로 흥얼거리며 시장통 골목을 빠져나갔다.






장 구경이 뭐가 재미있을까 싶었다.

더위에 지친 상인들은 퉁명스러웠다.

적당히 한 바퀴 돌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열에 들뜬 눈이 파업을 선언한 탓에 귀가 예민해진 탓일까?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돌아온 답이 귀에 붙었다.

지나는 사람들 사연도 귓가에 돌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도 유난히 정겨웠다.


일상으로 돌아와 며칠이 지났다.

해가 중천에 뜬 후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는데 장터 풍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눈보다 머리가 먼저 깼다.

아, 나는 게을러졌구나.

장돌림의 땀방울이 부러웠구나.

아마도 다른 날 갔으면 느끼지 못했을 무언가가 그날은 있었다.

우연이 겹쳐 내 마음을 움직였다.

왠지 다시 가고 싶어졌다. 동해.



20250822-_KKY1400.jpg
20250823-_KKY1435.jpg
20250823-_KKY1433.jpg
20250823-_KKY1439.jpg
20250823-_KKY1440.jpg
20250822-_KKY1403.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