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으로 가고 싶어하는 난영은 자신의 오래된 턴테이블을 고치려다가 제이를 만난다. 그 후 둘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난영은 자신의 목표인 화성을 위해 계속 나아가고, 제이도 자신의 오래된 꿈이 었던 음악인으로 무대에 선다. 난영은 화성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의 어머니를 순식간에 뺏어간 그 장소. 난영은 그 곳으로 다시 가려한다. 어머니의 흔적을 찾기위해. 그리고 또 자신의 학문적인 성과를 위해. 나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에 간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로는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곳이 나의 어머니를 뺏어간 곳이라면. 하지만 난영은 이에 굴복하지 않는다. 계속 해서 연구를 하고 화성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혹자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제이가 지구에 있고, 또 아내를 잃어버린 난영의 아버지도 지구에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은 난영의 꿈이다.
학창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꿈이라는 것을 강제적으로 적어낸다. 그리고 그 강제성이 함유된 꿈은 주로 종이 혹은 컴퓨터 화면 속에서만 존재한다. 성인이 되고 이 강제성은 사라지게 된다. 결국 누군가에게 꿈을 물어본다면 아마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을것이다. 인터넷이나 티비에서 항상 꿈을 가져야한다 얘기를 하지만 정말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뭉뚱그려져 표현되는 꿈이 아닌 구체적인 꿈말이다.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꿈이 사라진 사람보다 꿈이 아예 없었던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마치고 수능성적에 맞춰 생각해보지도 못한 전공을 하게 되고, 거기서 4년을 보낸 뒤 전혀 전공과 상관없는 쪽으로 일자리를 가진다. 꿈이라는 것이 생길 틈이 없으며 또 사회는 어찌나 성격이 급한지 우리가 꿈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난영처럼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찬란하다고 생각한다. 난영처럼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꿈을 가지는 것 자체도 소수인데 심지어 그 꿈을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제이를 보자. 음악인이 꿈이었던 그는 음악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음악인의 꿈을 찾아간다. 난영과 제이의 꿈.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지구적인 역할을 하는 난영의 꿈에 비하면 제이의 꿈은 초라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초라한 꿈은 없다고 생각한다. 꿈없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꿈이 있다고 세상을 잘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라 가지고만 있어도 빛이 난다.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세상에서는 난영의 꿈을 더 가치있게 봐주겠지만 제이의 꿈도 난영의 꿈 못지않게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오히려 누군가에겐 난영이 하는 연구보다 제이가 연주한 멜로디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정말 누군가에게 말하기조차 창피한 작은 꿈이라도 하나쯤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엄청난 위인이 될 필요는 없다. 세상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꿈도 필요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꿈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장면은 한글 간판이다. 보통 미래의 세상을 그리는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를 보면 대부분 해외 작품이기 때문에 주로 영어나 일본어로 적힌 간판을 보게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국에서 만든 작품이고 배경도 한국이기에 한글로 모두 되어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되게 새롭게 느껴졌다. 자막이 아닌 그림 안의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