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always
너 소개받을래?
유학 중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소개받아 볼 생각이 있냐고. 순간 멈칫해 잠시 대답을 망설였지만, 결국 ‘그래 뭐,’ 하고 답했다. 사진이 오고, 인적 프로필이 오갔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통과의례라도 되는 듯이.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다. 서른이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내는 삶. 나이를 먹는다는 건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무기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들 하던데, 어쩌면 지금이 그렇지 않을까.
정민님은 회사원이 되고 싶었어요?
사수에게 받은 질문이었다.
아니요. 한 번도 제가 회사원이 될 거라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순간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왜 회사원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밀려왔다. 사실 나는 조직생활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겼다.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 속에서 늘 ‘왜?’라는 질문이 들끓었고 그것들이 마음의 병으로 번지곤 했다. 입사 후 가장 힘들었던 건 가치판단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다 나에게 쓸모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그 마음가짐이 날 무기력에서 해방시켰다. 아니, 해방이란 거창한 단어보다는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니까 나도 한번 이렇게 살아보자’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익숙해진 게 더 맞는 말일지도.
6개에 만 원!
통장에 여태껏 가져보지 못한 액수가 찍혔지만, 나는 집 앞 반찬가게(4팩 만 원)를 놔두고 2km 떨어진 시장까지 간다. 밤마다 하천을 따라 뛰고, 대중교통 대신 걸어서 출근 중. 누가 ‘왜?’라고 묻는다면 ‘글쎄’라 답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돈을 벌기 시작하니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걸까.
퇴근 후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유 없는 행동들에 대해 나만의 답을 찾아봤다. 콩밥을 먹으며, 과자 봉지를 뜯으며, 숏츠를 넘기며.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무기력감과 싸우고 있다는 걸. 괜히 지친 몸을 이끌고 시장까지 가는 것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는 것도 가만히 있다가는 공허함과 정면으로 마주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여러 번 마주쳤고 몸이 방어기제를 발동한 건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고 있으세요?
본업은 작가예요. 부업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요.
요즘 나를 소개할 때 하는 답이다. 주체를 잃지 않으려 정체성을 맨 앞에 둔다. 내가 뱉은 말을 지켜야 하고, 말의 무게를 알아야 하기에 이렇게 답한다. 언젠가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약속했으니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로.
열심히 살아본 적 없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산다고 말한다. 이제야 그 답을 알겠다. 허무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그것이 열심으로 보였던 것이다. 침대에만 있는 내가 싫어 책 한 권 들고 무작정 카페에 가는 것, 그게 곧 몸부림이자 삶이었다.
이거 챙겨가.
어제 친구 회사로 출장을 갔을 때, 친구가 각종 디퓨저와 화장품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코스메틱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는 내가 이 길로 들어서게 만든 사람이다. 덕분에 돈을 벌며 살아간다고 해야 할지,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살아낸다고 해야 할지.
반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앵그리버드를 하며 웃곤 하던 두 중학생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친구의 퀭한 눈이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회사 복귀할 때 피곤하지 않겠냐고 커피를 사주는 녀석의 뒷모습에서 이유 가득한 고마움을 느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난 I 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