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별 헤는 밤

by 윤기환


나에게 몽골 여행의 으뜸과 버금 바람은 초원을 벗 삼은 자전거 라이딩과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 이었다. 몽골에 온 지 나흘 동안 초원을 달리면서 가슴 벅찬 희열을 실컷 맛보았지만, 아쉽게도 밤하늘에 별은 없었다. 맑았던 하늘이 밤만 되면 시커먼 구름이 덮이고 비까지 내리는 날이 이어지면서, 이러다가 나의 바램이 깨지는 가 싶어 내심 조바심도 일었다. 사실, 엊그제 초원에서 텐트 치고 자던 날 밤에 별을 보고 싶었지만, 그 간절한 소망은 비가 거두어 갔다.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도 했다. 다행히도 오늘 오후부터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열리더니 희망을 주기 시작했다. 오늘 두 차례의 라이딩과 승마로 인해 적지 않게 지쳐있는 데도 별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나를 흥분시켰다.


저녁을 먹고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 온전한 어둠이 깔리지 않는다. 몽골의 여름밤은 늦게 찾아온다. 은하수가 가장 절정인 시간은 새벽 두 시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기다림의 시간은 지루하다. 애써 잠을 쫓으며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10시 반을 넘기고, 하늘엔 서서히 별들이 깔리고 있다. 마당 한 구석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 보인다. 가이드와 젊은 친구 둘이 나와 있다. 전남 완도가 고향이라는 두 친구는 승마 체험을 위해 왔다 한다. 우리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여행을 하고 있는 그들이 부럽다. 나에게 맥주 캔을 건넨다. 함께 마시며 정담을 나눴다. 11시가 되어도 동료들은 소식이 없다. 숙소로 가니 다들 곯아떨어져 있다. 억지로 깨워 모닥불 앞에 모였다.

별을 기다리며.....


시간이 흐르면서 밤하늘은 바야흐로 우주 쇼를 준비하고 있다. 총총하게 박힌 별들이 마치 하얀 구름처럼 떼를 지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어릴 적 마당 멍석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바라보던 은하수가 타임머신을 타고 내게 돌아왔다. 그 시절, 손을 뻗어 훑으면 우두둑 한 움큼 잡힐 듯 지천으로 깔려 있던 은하수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노스탤지어로 남아 있다. 까만 밤하늘에 밝은 선을 그으며 별똥별 하나 떨어진다. 내 가슴에도 추억처럼 한 줄기 빛이 그어진다. 얼마 만에 보는 별똥별인가! 대자연의 우주쇼를 담으려고 핸드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으나, 돌아온 건 까만 도화지 몇 장뿐이다. 대우주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피곤에 지친 동료들이 하나 둘 숙소로 돌아간다. 자정을 넘기고 새 날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나만 오롯이 혼자 남았다.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이런 밤이 또 올까 싶어 잠들기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불멍 하다가 별멍 하고, 별멍 하다가 불멍을 한다. 행복하다. 그 어떤 말로도 이 순간을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행복에 겨워 몸서리치는 나를 본다.

별 헤는 밤 (출처 : 픽사베이)


밤의 행복을 노래하기에 딱 어울리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그야말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는 밤이다. 모닥불은 사위어가고, 툭툭 불꽃 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까맣고 서늘한 어둠이 온몸을 휘감는다.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무섭다. 숙소엔 모두 불이 꺼지고, 저 멀리 산등성이 마을 쪽에서 불빛 몇 깜빡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다시 사위는 적막강산이다. 다시는 맛볼 없는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늘바라기를 한다. 적요한 시간이 별빛 따라 흐른다. 술병에 별이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별빛에 가슴 부서지도록 취하고 싶은 밤이다. 소주 한 잔 간절한데 못내 아쉽다.


모닥불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몸은 조금씩 추워진다. 다시 개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가자! 나의 침실로......


풀 섶을 차며 걷는 내 머리 위로 별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별똥별 하나 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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