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동녘으로 맑게 씻은 고운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슬 머금은 풀내음이 상큼하다. 긴팔을 입었는데도 날씨가 쌀쌀하다. 몽골의 아침은 벌써 여름의 기억을 빠르게 지우고 있다. 오늘 우리는 며칠 동안 정들었던 에르덴을 떠나야 한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자전거와 짐 가방을 트럭에 싣고 나니, 마치 고향 땅을 떠나는 듯 마음이 허전하다.
차는 초원을 가로지르며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린다. 몸이 거친 파도처럼 심하게 요동친다. 이제 이런 길에 제법 익숙하다. 초원에는 늘상 그렇듯이 가축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풍경을 눈에 담는다. 한 시간 여를 달리니 포장도로가 나오면서 차량이 급격히 많아진다. 아파트가 보이고 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선 가로가 도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울란바토르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칭기스칸 광장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라 한다. 인구 160여 만 명(2016년 기준)으로 몽골 인구의 절반 가량이 거주하는 명실상부한 제1의 도시다. 제2의 도시인 에르데네트의 인구가 불과 10만여 명인 걸 고려하면 몽골에서는 거의 유일한 도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울란바토르시가 몽골에서 어떤 의미인가를 가히 짐작하기 힘들다.
울란바토르시의 중심인 칭기스칸 광장(수흐바타르 광장)에 도착했다. 이 광장의 조성 배경이 재미있다. 몽골 독립 영웅 담딘 수흐바타르가 이 도시로 개선할 때, 그의 말이 지금의 동상 자리에 오줌을 쌌고, 이걸 길조로 여기고 그 자리에 말뚝을 박아 놓았다. 후에 도시정비 사업을 하면서 말뚝이 있던 곳에 수흐바타르 동상을 세우고 그 동상을 중심으로 광장을, 광장 북쪽에 몽골 국회의사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마 민족의 후예다운 발상이다.
광장 북쪽 국회의사당 건물 중앙에는 칭기스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의 좌ㆍ우측에는 몽골제국의 대를 이은 아들 오고타이 칸과 원나라를 세운 손자 쿠빌라이 칸의 동상이 있다. 몽골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칭기스칸과 담딘 수흐바타르가 함께하는 이 광장은 몽골인들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어서 각종 국가적 행사나 문화행사, 콘서트와 축제, 집회 등이 열리는 장소로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라 한다. 휴일 이른 아침이라 다소 한산하지만, 광장 한쪽에 설치된 무대를 보면 오늘도 행사가 열릴 듯하다. 몽골의 역사가 집약된 광장을 한 바퀴 돌며 기념사진 몇 장에 담았다.
서울의 거리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서울의 거리’가 있다. 1995년 서울시와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고, 이듬해 시내 1km 구간을 ‘서울의 거리’로 지정했다. 이후 2010년 이를 2.1km로 확장하고, 녹지대와 가로등, 보도 등을 대대적으로 재정비를 했다. 그 당시 서울시 담당자 중 한 명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청이 아우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서울의 거리로 향했다.
서울의 거리 시작점에는 붉은 담장 정문에 몽골어와 한글로 된 '서울의 거리' 표지가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거리를 따라 걸었다. 당시 심었던 소나무와 각종 나무들이 멋진 가로공원을 만들고 있다. ‘서울의 거리’ 답게 곳곳에 한글 안내판이 있고, 우리나라 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한국 고유의 정취와 색상을 갖춘 ‘서울정’이 눈길을 끈다. 청이 아우에게, 다시 이곳을 찾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준공식 이후 이번이 두 번 째인데, 시설물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다소 아쉽다"고 토로한다. 그 마음을 알 듯하다. 이 거리에 애정을 쏟았던 그의 눈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을 세심하게 보고 있었다. 곳곳을 유심히 살피며 걷는 그의 얼굴에 아쉬움과 자부심이 교차하고 있음을 본다.
서울의 거리에는 몽골의 주요 은행들이 들어서 있고, 백화점과 고급 레스토랑, 카페도 많이 보인다. 눈에 익은 편의점과 한글 간판도 눈에 띈다. 실제로 서울의 거리는 울란바토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고 한다. 거리를 걷다 보니 우리 서울의 모습을 많이 닮은 듯하여 처음 걷는 거리 같지 않고 왠지 친숙하게 다가온다.
울란바토르시를 조망하다
몽골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로 향했다. 일요일인데도 도로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어렵사리 도착했는데, 공사 중이라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아쉬움을 안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몽골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울란바토르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낮은 산이 도시를 빙 둘러싸고 있다. 도심의 빌딩 숲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중턱까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당초 울란바토르는 50만 인구 도시계획에 따라 설립된 도시라 한다. 그러나 지금 울란바토르시는 그 세 배가 넘는 인구를 받아들이는 도시로 팽창하고 있으니 그만큼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을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전 우리의 서울도 그러했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도시가 급격히 팽창되면서 도심 변두리에는 많은 슬럼가가 형성되었다. 70년대 초,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나 처음 정착했던 구로동도 그중 하나였다. 다닥다닥 붙은 소위 '닭장집'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수돗물과 전기도 자주 끊기고, 비가 오면 도로가 온통 진흙탕으로 덮이던 시절이 있었다. 울란바토르시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교통 체증, 극심한 대기 오염 과 환경 문제, 각종 도시기반 시설 부족 등으로 도시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한다.
언덕 아래로 도시를 감싸고도는 톨강이 보인다. 에르덴에서 보던 맑고 푸르던 강물은 온데간데없고 시커먼 흙탕물이다. 과거 우리 서울의 한강이 그랬듯이, 격변하는 울란바토르시의 아픈 몸살을 톨강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멀리서 조망하는 푸른 하늘 아래 도시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고단한 삶을 헤쳐가고 있을 수많은 소시민들의 아픔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 켠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