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생이 올빼미였나 보다

by 윤기환


한낮의 무력감이 밤이 되면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이렇게 늦은 밤까지 깨어있을 때면 내가 온전히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곤 한다.


아무래도 난 전생이 올빼미였나 보다.


아주 오래전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나,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책과 시름할 때도 난 늘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또, 직장에 들어가서도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잦았다. 그때는 그렇듯 숱한 밤을 새워도 한숨 자고 나면 끄떡없던 젊은 올빼미 시절이었다.


환갑을 넘기고 늙은 올빼미가 된 지금, ‘손해평가사’ 시험에 도전하면서 또다시 그 옛날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뭔가에 몰두하기엔 아직도 밤이 좋다. 사위가 칠흑으로 덮이면서 세상의 번뇌와 마음속 잡념까지도 어둠 깊이 침잠시키는 밤이 나는 좋다.


싹·둑·싹·둑 시간을 잘라먹던 시곗바늘이 어느덧 새벽 4시를 넘기고 있다. 거실로 나와 물 한잔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여니, 막걸리 한 병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피곤한 몸을 뉘이기 전 막걸리 한잔은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다. 식탁에 앉아 묵은 김치를 안주 삼아 짜릿한 행복을 마신다. 약간의 술기운까지 오르니, 절인 배춧잎처럼 온몸이 처지고 나른해진다. 이제 그만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한다. 그러나 잠자리에든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열심히 돌아가던 선풍기도 하품을 하며 제 할 일을 멈춘다.

기계도 지쳐 누운 밤. 이제는 자야 한다. 아니, 자고 싶다.


누가 이 늙은 올빼미를 꿈나라로 데려가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