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그늘

by 윤기환

종일 바깥바람조차 쐬지 않고 책상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거실과 화장실, 베란다를 오간 것이 오늘 내 동선의 전부였다. 날이 꾸물거리고 비가 오락가락하기도 했지만, 밀린 책장을 넘겨야했다. 이번 주는 이런 저런 일들로 책에 집중하지 못했다. 며칠 만에 잡은 책이 왠지 낯설다. 두툼한 책장을 하릴없이 넘겨본다. 나오는 건 한숨 뿐이다. 언제 이 많은 문제들을 다 풀어낼 것인가!

'게으른 농부 밭고랑만 세고, 게으른 선비 책장만 넘긴다'는 옛말이 새삼 와 닿는다.

얼마 전 1차 시험을 치루고, 본격적인 2차 대비에 돌입했다. 1차 시험 준비로 최근에는 2차 과목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그동안 2차 두 과목은 독본과 문제집 각 2회독 정도를 했을 뿐이다. 이제 겨우 전체적인 윤곽이 잡힌 정도인데, 시간은 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바쁘다.

문제집 한 권 다시 풀어 가면서 한숨이 잦아든다. 또다시 어이없는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나이가 주는 한계를 극복하고, 망각의 그늘에 덮인 책장을 넘기는 일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지친 몸을 자리에 뉘였다. 수많은 공식과 풀다 만 문제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니며 뒤죽박죽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도 넘기는 책장 속에서 희망을 보는 날이 오겠지......

오늘도 새털 같은 날이 또 하나 뽑히더니 어둠 속으로 훌쩍 사라지고 있다.

이전 01화나는 전생이 올빼미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