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하고 소박한 배 한 척을 준비했다. 스스로 그 배의 선장이 되어 '또다른 항해'를 떠났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 머리를 기르고, 때론 수염도 깎지 않은 채 자연인처럼 살기도 했다.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행복이었다. 평생을 일정한 틀에서 살았던 나에게는 원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 해가 흘렀다.
그러면서 나에게 던진 질문은,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였다.
결국, 진정한 자유는 육체적 방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일정 부분 사회와 교류하는 삶이 진정한 자유임을 알았다. 그 길을 모색하고 있던 중, 00교육청의 시민감사관 모집 공고를 접하고 지원을 했다. 공직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고, 부패방지를 위한 청렴정책 수립을 지원 하는 시민감사관 업무는 오랜 공직 경험을 통해 내가 잘 수행할 수 있는 분야였다. 시민감사관으로 활동을 하면서, 또다른 도전을 이어갔다. 손해평가사 시험이었다.
예순 셋에 시작한 도전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을 시험일 수도 있으나, 늙은 올빼미에게는 힘든 과정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나이가 주는 망각과 몸이 따라주지 않는 세월의 무심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고된 일정이었다. 지난했던 1년 반의 시간이 흐르고, 오늘 '합격'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한 번의 좌절과 상실을 맛보게 했던 도전이었기에 더욱 값지다.
사실, 이 자격증이 나에게 대단한 명예를 주는 것도 아니며, 많은 경제적 소득을 주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한 번 시작한 나와의 싸움에서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시험으로는 마지막이 될 나의 도전을 '중도포기'라는 단어로 불편하게 마무리짓고 싶지 않았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 했다. 그 믿음으로 버텼다.
잘 버텨낸 나의 엉덩이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그동안 가까운 지인 외에는 말을 못했지만, 이제는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도 늙은 올빼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망망대해를 향한 나의 항해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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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손해평가사 도전을 위해 책과의 시름을 시작하던 때가 어언 4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때 메모해 두었던 속앓이들을 다시 꺼내어 독백처럼 되뇌어보았습니다.
부족한 글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는, 손해평가사가 된 이후, 전국의 과수원과 논.밭에서 만난 농민들의 삶과 애환, 사람 냄새 나는 현장 이야기(어느 손해평가사의 하루)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어느 손해평가사의 하루'도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