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의 끝

by 윤기환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마치 종전의 나팔 소리처럼......

마지막 펜을 놓으며 나는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아! 이렇게 전쟁이 끝나는가......"


종소리가 멈췄다. 모든 것이 일시에 정지된 듯 고요하다.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수많은 전사들이 각자 알 수 없는 얼굴을 하며 흩어진다.

함께 파묻혀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내 몸에 알 수 없는 허전함이 감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 한 잔 했다. 집에 오자마자 푹 쓰러져 자고 일어나니 자정쯤 됐다.

노트북을 켜고 학원에서 발표한 모범답안으로 가채점을 했다. 가는 떨림의 순간이 지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대로 무난히 합격점을 넘은 넉넉한 점수를 받을 듯했다. 아직 예단하긴 이르지만,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시험의 끝은 늘 허전하다.

다시 몸을 뉘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끈 떨어진 연처럼 공중에 나풀거린다. 공허한 마음 끌어안고 눈을 붙이려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뒤척이다가 비몽사몽간에 날을 새웠다. 방 한구석에 책상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다. 매일 동고동락하던 친구를 잃었다는 듯, 날 빤히 쳐다본다. 살짝 눈웃음으로 인사하고,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린다. 인간극장과 아침마당, 코로나와 정치 관련 뉴스들이 어지럽게 흘러나온다.


거실로 나와 창을 여니, 하늘은 모처럼 맑고 쾌청하다. 제법 바람도 불고 선선한 기운이 돈다. 8월도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 가을이 손끝에 잡힌다. 숱한 땀방울을 뿌리던 계절이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 08화선전포고와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