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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석 Jun 22. 2024

망국의 군주 고종은 매국노였나?

뉴라이트사관 반대!

고종은 영민하지 않았고, 두번의 청나라 군사의 조선출병에(임오군란, 동학농민전쟁) 큰 책임이 있지만 1897년 대한제국 선포에서 1919년 독살에 이를때까지 목숨을 건 항일투쟁을 벌였으므로 ’매국노‘로 폄하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해산군인과 의병 연합군의 총수는 약 14만명, 전사자 약1만7천명 <일본군사사>)


  ‘고종은 일제의 ‘궁금숙청' 와중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거의를 촉구했다. 1905년 8월 고종은 궁내부 주사 김현준에게 밀지와 3 만냥의 군자금을 주고 경남 거창으로 내려보내 거의를 도모토록 했다. 또한 민경식• 강석호 이봉래•민형식 등 최측근 별입시들을 밀지 전달과 거의독려의 연락책으로 투입했으며, 호남의 연합의병장 최익현, 충청우도 연합의병장 민종식, 영남좌도 연합의병장 정환직 등에게 전달되었다.

1905년 11월 22일(양력 12월 18일) 고종이 최익현에게 의병을 일으키라는 ‘애통밀조’를 내렸다. 을사늑약이 체결된지 한 달 만에 내린 것이다. 이것은 일제에 맞선 국민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밀지였다. 이 밀지에서도 고종은 "나의 실낱같은 목숨은 아까울 것이 없지만 오직 종묘사직과 만백성을 생각해" 밀지를 보낸다고 적혀 있다. 즉, 고종은 사직을 위해 순사하겠다는 각오로 밀지를 보낸 것이다. 밀지 하나하나가 고종에게는 목숨을 건 지시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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