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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겨우 350명의 무장대 때문이라고?’황현필7

정통사관 완전정복

by 현진석

<4.3의 비극이 겨우 350명의 무장대 때문이라고?> 황현필 反韓史觀 비판 7편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팩트(fact)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이념에 봉사하는 정치문서에 불과하다. 중산간 마을,관공서,각급 학교,경찰,국방경비대에 모두 남로당 세포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물론 지연과 학연으로 이름만 올린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제주도민 20만명중에 남로당원이 5만명이라고 알려져있었다.

(황현필, 235쪽)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후 사망자는 1만3천명이 넘었다. 겨우 350명의 무장대를 때려잡으려다 이렇게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민간인 학살은 군대와 육지경찰, 서북청년단이 자행했다. 군대와 경찰에 대한 명령권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현길언, 96쪽) ’모두들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모든 것을 청산하게 만든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내가 또는 그가 어느 편에 있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축복처럼 받아들였다. 왜냐면 살아남으로 그 아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편에서 어떤 경험을 했든 그것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훗날 그들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말하면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다. 아마 그 험난한 광란의 시대를 함께 겪었다는 동질감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조용조용한데, 살아있는 자들의 목소리는 거칠다. 왜 그럴까? 아마 겪었던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큰소리를 칠 필요가 없지만, 사태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 큰 목소리로 그들이 의지할 가치나 이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통사관, 133쪽) 제주도 남로당 세포였던 김생민씨의 증언은, 4.3사건의 출발점이었던 47년 3.1절기념집회에서의 유혈사건도 남로당의 계략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어 같은 해 3월 1일, 소위 3.1사건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날 조천면 사람은 제주읍의 동문으로, 애월 쪽 사람은 서문으로, 제주읍 사람은 남문으로 들이닥쳐, 제주읍 전체를 덮도록 했다. 이날 시위는 주둔 미군에 대해 위력을 과시하고 반미 투쟁을 시험해본 것이라 했다.

이런 사건은 모두 제주도 남로당이 단독으로 한 것이 아니라, '박헌영의 지령에 의하여 전남도당의 조직자가 내려와 지휘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3.1사건 때 그들은 경찰을 고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미리 준비했던 끄트머리를 날카롭게 깍은 대막대기로 기마대 부대장 임영관이 탄 말의 엉덩이를 찌르게 했다고 한다. 말이 날뛰면 군중이 다칠 것을 미리 계산한 행위였다. 이 사건은 계산대로 들어 맞았다. 경찰이 발포, 6명이 죽고, 10여명의 부상자를 낸 것이다.

(당시 경찰관이었던 문창송씨 등은 사망자가 2명이었다고 했다.) 오성찬 채록.정리, <한라의 통곡소리> 194쪽‘


(정통사관, 134쪽) ‘한편, 4.3사건이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은 섬이라는 배타적인 환경과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좁은 지역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고, 3.1 유혈사건 이후의 각종 시위와 파업을 해결하기위해 새롭게 제주도지사로 임명된 전북 출신 유해진의 극우적인 행동이 도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넬슨 미군정 특별감찰관은 <특별감찰 보고서>를 통해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유지사의 교체를 건의했으나, 딘 군정장관은 그를 그대로 유임시켰다.

'그는 도정 업무를 적절히 수행하는 데 있어서 반복적으로 무능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무모하고 독재적인 방법으로 정치이념을 통제하려는 쓸데없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는 좌파를 지하로 몰고 갔으며 그곳에서 좌익활동은 더욱 위험스럽게 변모했습니다.

또한 테러 행위를 수 없이 자행했습니다. 경찰 최고위직은 모두 육지에서 모집된 경찰관들로 채워졌고, 많은 자리에 제주도 주민들에게 호응받지 못하는 육지 사람들을 임명했습니다.’

유지사와 함께 들어온 육지 사람들 중에는 서북청년단도 있었는데, 그 숫자가 점차 수백명으로 늘어나면서, 제주도민 20만명 중에서 남로당원이 5만명에 달한다는 사실과(친인척에 의한 명목상 등재) 함께 좌익 청장년들에 대한 폭행, 강금, 금전수수(정식 급여가 없었슴으로) 등의 여러 행패를 부려 민심이 크게 동요하였다.

48년 4.3폭동으로 살인, 방화, 파괴가 일어나자 제주도는 '빨갱이섬'으로 몰려, 이승만대통령과 조병옥은 '지방 토색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 으로 처리할 것‘을 지시하여 섬은 지옥같이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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