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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vs 역사왜곡노?>

조선망국론의 부활

by 현진석

작가의 경력을 보면 문서비평(textual criticism) 정도의 용어는 충분히 들어봤을만한 사람인데, 책은 편향적인 자료와 야담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작성된 문서인지 살펴보아야 하는데도, 의도적인지 또는 무지해서인지 전혀 비평하고 있지않은 것이다.

주요 자료들을 살펴보면..


1. 전통적인 사관의 사초를 기초로 하지않고 일본 식민사학자들과 심지어 을미사변의 낭인(기쿠지 겐조)까지 제작에 참여하여, 외교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조선정부의 주체성을 격하시킨 ‘고종실록’

2. 시골선비들이 풍문을 기록한 ‘매천야록’, ‘나암수록’

3. 일본의 입장에서 기록한 ‘주한일본공사관기록’


군사예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고종이 탐관오리들과 부정부패를 막지못하는 무능한 통치로 ‘잃어버린 20년’을 흘려보낸 것은 망국의 한이다. 그러나 일제의 칼날 앞에서 목숨을 걸고 지속적으로 의병들에게 거병밀지를 보내어 결사항전한 고종에게, 돈 몇푼에 나라를 팔아먹은 죄인으로 부르는 것은 일제의 ‘망해야할 나라- 조선망국론’에 가담하는 행위일 것이다.


'고종은 일제의 궁금숙청 와중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거의를 촉구했다. 1905년 8월 고종은 궁내부 주사 김현준에게 밀지와 3만냥의 군자금을 주고 경남 거창으로 내려보내 거의를 도모토록 했다. 또한 민경식.강석호.이봉래.민형식 등 최측근 별입시들을 밀지 전달과 거의독려의 연락책으로 투입했으며 , 호남의 연합의병장 최익현, 충청우도 연합의병장 민종식, 영남좌도 연합의병장 정환직 등에게 전달되었다.

1905년 11월 22일(양력 12월 18일) 고종이 최익현에게 의병을 일으키라는 '애통밀조'를 내렸다. 을사늑약이 체결된지 한 달 만에 내린 것이다. 이것은 일제에 맞선 국민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밀지였다. 이 밀지에서도 고종은 "나의 실낱같은 목숨은 아까울 것이 없지만 오직 종묘사직과 만백성을 생각해" 밀지를 보낸다고 적혀 있다. 즉, 고종은 사직을 위해 순사하겠다는 각오로 밀지를 보낸 것이다. 밀지 하나하나가 고종에게는 목숨을 건 지시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종족주의>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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