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대다수는 민족주의자라고?> 황현필 反韓史觀 비판 8편
도대체 말이 안되는 주장이다. 무장투쟁만이 독립운동이란 말인가?
임시정부와 해외의 민족주의자들과 국내의 안창호, 김성수, 서상일, 안재홍 등의 실력양성파 민족주의자들, 북쪽의 안창호와 조만식 등의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강력한 사상통제에 놓였던 사회주의자들을 압도라는 숫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황현필) ‘사회주의자들이 모두 독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자들이었고, 민족주의자들이 모두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친일파의 대다수는 민족주의자였다.‘
(정통사관) ‘대한민국 건국세력의 주류는 항일 민족주의자, 온건한 민족주의자, 월남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다. 특히, 임시정부의 초대대통령 이승만, 마지막 주석 김구, 최고의 브레인 조소앙, 내무부장 신익희, 이시영, 광복군사령관 지청천, 이범석, 장준하, 김준엽 등등의 주류세력이 모두 남한에 집결하여 민족의 정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북한과 남한 추종세력의 선전선동이 심각하지만, 대한민국은 실체적 진실을 살펴보면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나라임이 명백하다 .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받은 항일 민족주의자들과 국내의 온건한 민족주의자들, 소련점령군의 폭정에 남으로 내려온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 민족의 아성‘인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은 주류세력과 국내 민족주의자들이 결집되어 있었다. 김일성의 회유를 물리치고 남으로 내려온 김구, 6.25전쟁에 참전한 김구의 아들 김신(공군참모총장), 임정 최고의 이론가 조소앙, 국회의장 신익희, 부통령 이시영,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안재홍, 광복군사령관 지청천, 초대 국방부장관 이범석, 미군정 통위부장 유동열,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진보주의자 조봉암, 부통령 김성수..
반민특위에서 반민족행위자로 거론된 인물들과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추산한 숫자는 대략 천여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은 초대 내각과 제헌의회 선거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되어(미군정 법령 제175호) 대한민국의 주류에서 탈락하였다.
물론, 식민잔재는 남을 수 밖에 없었지만, 평화로운 선거를 통한 개혁정권에 의한 친일청산은 김일성과 공산제국주의의 전쟁도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실제로 50년 5월의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치적 유동성이 강한 무소속이 대거 당선되어, 국회 간선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은 교체될 가능성이 풍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