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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Jul 12. 2023

누군가는 감자로 술을 만든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화전민의 낙, '감자술'을 음주해 보았다.

혹시 '서주'라는 단어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삼국지의 '서주'라는 지역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머릿속을 아무리 굴려보아도 '서주'가 술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으며, 당연하게도 '서주'의 '서'가 '감자 서'를 의미하여 결국 '서주'는 감자 술을 뜻한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주가 정말 다양한 것은 알았지만 감자로 만들어져 유래되는 술이 있을 줄이야. 참으로 술의 세계는 빠지면 빠질수록 심오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가양주에서 전해진 전통주와 달리, '서주'는 강원도의 화전민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온 술이다. 당시 그들의 주식량은 구황식품인 감자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자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개발되며 먹다 남은 감자로 술을 빚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서두를 이러한 내용으로 이야기한 것을 보고 다들 어렴풋이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 가져온 술은 바로 이 '감자술'. '서주'이다. 온라인에서 술을 살펴보던 중 나의 눈에 띄게 되었고, 특별히 음주해 본 기억이 없는 술이기에 곧바로 가져오게 되었다. 다른 술과는 달리 '감자'로 만들어진 '서주', 그 맛과 향이 어떨지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화전민의 낙, 감자술

병을 보자마자 느껴지는 것이 확실히 감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술의 뚜껑부터 디자인, 그리고 술까지 모두 감자와 같은 색을 띠고 있다. 흰색띠지에는 감자그림과 함께, '감자술', '평창서주' 등의 단어가 적혀있는데, 이 두 가지의 의미는 동일하다고 보면 되겠다. 솔직히 디자인에 그리 많은 공을 쓴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누가 봐도 '감자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주(감자술)'은 '오대서주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약주로서, 이름 그대로 강원도의 특산품인 감자를 발효시켜서 만든 술이다. 일체의 인공첨가물 없이 평창 감자와 오대산 맑은 암반수로 빚어졌으며, 찐 감자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다음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담근 밑술을 붓고, 보름간 숙성시켜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감자로 만들어져 구수하기만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쌀로만 만든 약주에 비하여 좀 더 상큼하다고.


감자에서 태어난 이 술의 용량은 300ml, 도수는 13도, 그리고 가격은 4180원이다. 특이한 것이 보통 온라인에서 술을 구매하게 되면 해당 판매사에서 할인을 해야지만 저렇게 십 원 자리가 남게 되는데, '감자술'의 경우는 대부분의 판매사에서 '4180'원을 정가로 판매하고 있다. 가격 자체는 그리 비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잔에 따른 술은 실제 감자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색을 선보인다. 막 투명하기보단 어느 정도 탁한 느낌을 가져다주며, 빛깔 자체는 무른 듯 투명하다.


코를 가져다 대니 오묘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쌀, 누룩, 감자향 약간에 상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끝에서 느껴지며, 전반적으로 향 자체는 은은하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인 청주가 가진 향의 방향에서 약간 틀어졌을 뿐, 큰 차이는 나지 않는 편이다. 확실히 삶은 감자향이 코 근처에서 곁 돌고 있다.


이어서 잔을 몇 번 흔들어 한 모금 머금으면 적당한 산미를 포함한 고운 약주가 혀를 감싸 안는다. 입 안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주감을 가지고 있고, 상당히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간다.


조금의 단 맛과 산미, 그리고 미세한 알코올의 순서로 맛이 진행되며 쌀과 감자가 널리 분포해 있는 상태이다. 사실 이 술이 '서주'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자가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되며, 만약 그 어떤 술인지 몰랐다면 정확히 감자가 들어갔단 사실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진다. 

목 넘김 이후에는 마찬가지로 단 맛과 산미, 그리고 씁쓸함과 고소함을 혀에 놓고 사라지는 듯하다. 삶은 감자가 생각 나는 맛이 꽤 긴 여운을 가져다주고, 13도라는 도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알코올의 맛이나 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적당한 무게에 입 안에서 퍼지는 삶은 감자의 풍미가 꽤나 괜찮다. 각각의 맛들이 특별히 튀는 것 없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기에 누구나 큰 호불호 없이 음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살균약주'로 분류되어 있긴 하나 우리가 흔히 약주에서 느끼던 양부가 가려지는 맛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아 단순히 '약주'라는 이름에서 꺼려짐이 생기던 사람들도 편히 음주해도 될 것 같다.


대단히 무르익은 맛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보편적으로 각각의 재료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술이다. 감자술이 어떤 맛인지 궁금한 사람은 직접 마셔보며 음주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감자술을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감자전을 곁들여 음주해 보길 바란다. 같은 재료라서 그런 건지, 둘의 궁합이 좋아서 그런 것인진 모르겠으나 고소함과 조화로운 술이 만나니 너무나도 좋은 궁합을 선보인다.




'서주(감자술)', 생각보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을 것 같은 술이었다. 맛들의 조화가 훌륭했으며, 산미나 단 맛, 고소함 모두 강하지 않고 제 역할을 잘 지켜주는 듯하여 술을 마심에 있어서 크게 부담스러움이 없었다.


'감자술'이라고 하면 굉장히 옛날 술 같고, 조상들이 만들어 투박할 것 같은 술이지만 막상 음주해면 그러지 않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마셔보길 바란다.


강원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서주(감자술)'의 주간평가는 3.3/5.0이다. 어우러짐이 좋았고, 모난 곳 없이 무난하였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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