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by 윤재

63. 속삭임



"한 번쯤 새로 시작해 본다면 나는 먼저 세상을 재는 단위부터 바꿀 생각이다.

아무렴.

모든 거리나 높이는 땀방울로 재는 거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이런 산들은 해발 일 미터 단 오백 사백 삼백 땀방울,

종로에서 서울역까지는 일 미터당 오십 땀방울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도 땀방울로 재는 거다.

한 시간에 사백 땀방울짜리 일과 오백 땀방울짜리의 일.

그렇다면 그 호수, 어느 날 아재비가 하늘을 담은 그 호수는 몇 땀방울의

호수인 것일까.

그리고 말이지.........

우리가 사는 데 흘리는 모든 눈물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면!

눈물 한 방울의 에너지............

이 눈물 에너지의 단위는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그건 그저 방울이라 부를까.........

에너지 다섯 방울짜리 눈물, 이렇게 부르는 거야."

--최윤, 『속삭임, 속삭임』, 민음사, 1994 중에서



“한 번쯤 새로 시작해 본다면 나는 먼저 세상을 재는 단위부터 바꿀 생각이다”

라는 문장을 읽고, 어제의 점심 자리를 떠올렸습니다

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대학 동창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바꾸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한참을 지나왔다고... 생각이 드는 지금.

친구들과의 만남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게 합니다.



최윤 작가의 『속삭임, 속삭임』 글 속 땀방울처럼,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다시 재본다면,

우리들의 땀은 몇 방울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젊은 날엔 미처 알지 못했던 ‘시간의 무게’가 우리의 대화와 웃음 사이를 조용히 흘러갔습니다.

스무 살의 서툴고도 풋풋했던 우리들.

우리들은 “그때, 그랬었지”라며 오래된 시간을 재생하였지요.

우정이 에너지가 된다면,

함께 했던 시간 속의 땀과 웃음이 지금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의 한 원천인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성적표로, 통장 잔고로, 나이로, 자식의 성취로 환산되기도 하지만,

이제 남는 건 발걸음의 속도를 서로 맞추는 우정의 방식이지요.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이미 진입해 있다고 여겨지는 우리들, 미끄러지지도 않고 추워하지도 않으면서 가고 싶습니다.



시인의 표현처럼, ‘내일은 게으른 영혼의 도피처이며 비루한 마음의 가림막’이 될 수 있으니, 우리는...........오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보내야 하겠지요. 출생과 더불어 시작된 죽음의 길, 친구들과 아름답게 늙어가면 좋겠습니다. 한 친구가 호수를 바라보는 풍광이 아주 멋진, 좋은 곳에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며, ‘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아름다운 사람의 길’☘(윤중호의 시 <영목에서> 일부)을 그 친구가 내어주고 있습니다. 내년 초대를 약속했으니, 그곳에서 우리들이 젊은 시절 들었던 친구들의 노래를 다시 한번 기대해야겠습니다. 작은 거인이란 별칭의 K가 부른 <가는 세월>, 아직도 귀여움이 동글동글 남아있는 K2의 <봄날은 간다>, 밤에 태어나 까맣다는 K3의 <피리 부는 사나이>, 고상한 분위기의 C가 부르는 <축배의 노래>, 소식이 듬성듬성한 D의 <열애>, 합창단 동아리 멤버였던 I와 Y의 <이중창>, 제 마음대로 구성해 보니 호숫가 음악회가 풍성해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울 수 있겠습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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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황인학 재경보은군민회장이 대청호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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