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울릴 타전소리

by 윤재



저녁 식사 후 집 앞 공원을 산책했을 때, 유난히 풀벌레 소리가 청량하게 다가왔습니다.


매미 수컷은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자기 몸의 반 이상을 텅 비워놓는 극단적인 진화를 했다고도 하지요. 옛글에는 “매미는 자못 청렴한 듯하지만 그 청렴함을 자랑하면서 시끄럽게 울어댄다”라고 합니다. 늦여름 쨍쨍한 햇빛과 맞서던 매미 소리가 수그러드니, 밤 풀벌레 소리가 옛 시골집 정취를 떠오르게 하면서 나희덕 시인의 시 <귀뚜라미>가 생각납니다.



<귀뚜라미>

-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1999



매미의 울음에 묻혀 아직 노래가 되지 못한 울음을 시인은 조용히 고백하는 듯합니다. 울음은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감정의 폭발이지만, 노래는 그것을 가다듬어 타인에게 건네는 형식이 됩니다. 울음이 자기 내부에만 맴도는 호흡이라면, 노래는 타자를 향해 열리는 다리라 할 수 있지요.


‘마음의 너그러움과 따뜻함’을 보여주고, ‘삶과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내포한 모성적 본능 또는 사랑’을 전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나희덕(1966~ ) 시인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언어가 ‘사람을 위로하고 살려내는 언어이길 바란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울음이 노래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들어줄 귀, 공명할 가슴이 필요합니다. 즉, 들어주고, 공명할 타자가 있어야만 울음은 노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리며,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는지?” 이 질문은 곧 존재론적 고독의 확인이자, 타자와의 관계를 향한 열망으로 다가옵니다.


여름 끝자락의 매미 울음은 하늘을 찌르듯 쏟아지고, 계절은 가을로 기웁니다. 여름의 뜨거운 목청 속에서 제 목숨을 불살랐던 매미 소리는 가을바람에 묻히며 사라지지만, 그 뒤에 남는 것은 고요 속에 스며든 여운입니다. 울음이 흘러간 자리에 침잠하는 시간, 그것이 곧 가을의 풍경입니다.


가을은 우리를 혼자 울게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울음을 듣게 만듭니다. 떨어지는 낙엽 소리, 차가워지는 공기, 해가 짧아지는 저녁의 정적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울음을 감추지만, 그 침묵은 우리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공명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고독의 계절인 동시에, 공감의 계절입니다.


시인의 질문에 계절이 답을 합니다.

“네 울음은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에서 노래가 된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시다.




*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기다려 주시면, 이른 가을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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